<과학자가 되기 위한 지침서>라는 다소 낯간지러운 제목의 번역서가 지난 5월에 소개되었다. 책의 원제는 <Survival Skills for Scientists>이며, 지난 2006년에 출판되었다. 저자에 대해 소개하자면, 우선 Federico Rosei는 이탈리아 로마 출신으로 로마대학에서 학위를 취득한 뒤 물리학자로 현재 캐나다 퀘백대학교에서 종신교수로 재직중이다. 다른 저자인 Tudor Johnson은 캐나다 출신으로 캠브리지에서 공학박사를 취득하고 퀘백대학교 내의 연구소에 근무하고 있다. 저자인 둘 모두 인정받는 과학자라고 하며, 선배로서 과학자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들을 책을 통해 들려주고 있다.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신간검색을 통해서 였다. 책의 목차가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검색을 해보았으나, 없었기에 신간구입신청을 냈고, 몇 주 뒤에 도서관에서 볼 수 있었다. 책의 첫장, 첫 페이지부터 굉장히 인상적으로 나를 매료시켰는데, 그 부분이 과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동료들에게 동일한 긍정적인 효과를 끼치길 기대하며, 몇 문단을 옮겨 적어본다.
3 page
많은 사람들은 순수과학의 주요 목적은 자연의 법칙을 연구하고 새로운 지식과 통찰력을 기존에 존재하고 있거나 당신이 창조하는 시스템의 물리적, 화학적, 그리고 생물학적 과정에 제공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진짜 과학자"는 자연의 신비를 풀고자 하는 욕망으로 불타는 사람들이다. 다른 것들은 이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어느 지적인 자선사업가가 과학자에게 똑가은 봉급을 지급했을 때 그 봉급에 특별한 조건이 붙어 있지 않다면 진짜 과학자는 지금까지 해오던 일을 계속할 것이다. 사실 진짜 과학자는 과학에 중독된다.
돈이라는 것이 진짜 과학자에게는 기본적인 동기는 아니지만 전혀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충분한 연구비 없이 좋은 과학을 한다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매우 어렵고도 도전적인 일이다. 그래서 연구비는 (적절한 표현은 아니지만) 목적을 위해서 꼭 필요한 수단이다(연구비 자체가 목적인 과학자도 있기는 하다).
4 page
당신의 근본적인 목표가 부자가 되고 유명해지는 것이라면 연구 계정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은행 계정 측면에서 보더라도 당신의 그 목표를 단순하고 빠른 방법으로 이루게 해줄 다른 직업을 선택하기를 강력하게 권하는 바이다. 최고의 과학을 위해 노력하는 과학계의 프리마돈나와 엠파이어 빌더들은 충분히 많이 있다. 부자가 되기 위해 과학에 잘못 의지하는 사람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5~6 page
많은 시간들, 심지어 주말에까지도 일을 하면서 보내야 하며, 거기서 기쁨을 맛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과학자라는 직업은 주 5일, 하루 8시간 근무하는 일은 결코 아니다. 회사에서의 골칫거리들을 모두 잊어버리고 가족들과 즐기며 취미 활동을 하는 일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당신이 꿈꾸는 완벽한 주말은 극히 드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주 5일 근무의 로망에 젖어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 당장 다른 직업을 알아봐야 할 것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운 좋게 한 자리를 꿰차고 과학에 대한 아무런 열정도 없이 판에 박힌 하루 8시간 근무에 출실한 사람들이다. 과학자들을 알파 과학자와 베타 과학자로 분류한다면, 이들은 감마 과학자들에도 속하지 못하는 델타 과학자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들은 과학에서 결코 성공의 길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7 page
당신이 진정한 과학자라고 한다면, 당신이 이야기하거나 과학 논문을 쓰고 연구비 신청서를 쓸 때에도 당신의 열정이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동료들이 존경의 눈길로, 때로는 경외에 찬 눈빛으로 당신을 올려다 볼 것이고, 당신을 영감의 원천(당신을 질투하거나 시기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으로 여길 것이다. 당신이나 학생들이 새로운 결과를 얻거나 이전에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 어떤 것을 이해할 때에는 흥분을 감추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흥분이나 열정은 과학자들에게 진정한 보상이다.
9 page
당신이 학계에서 일하면서 교수에까지 이르게 된다면 과학자는 물론 경영자도 되어야 한다. 연구를 수행하기 위한 연구비를 끌어올 수 있어야 하고 적당히 그것을 운영할 줄도 알아야 한다. 공적인 연구비를 받은 경우에는 국민의 세금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재단에 정기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본질적으로, 과학자라는 직업은 다면적이어서 인간의 노력을 위한 많은 다른 영역을 접하게 될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모든 것은 정말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이다. 처음에도 언급했듯이 나 자신을 알아야 한다. 나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을 때 올바른 선택을 할 수도 있고 결국 더 행복한 생활을 할 수도 있다. 이것은 단지 과학 진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식당에서 무엇을 주문할지 결정할 때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많은 젊은이들 중에는 큰 강에서 수영하는 사람이 보트가 떠내려와 주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무언가 좋은 것이 나타나기를 바라고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일을 싫어한다. 그들은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들이 어떻게 일을 할 수 있는지 스스로를 잘 알지 못하며, 과학자로서의 특별한 업무 환경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과학자'가 아니라 '과학을 이용하는 자'에게 지침을 제시하지 않는다. '과학자'가 아닌 이들에겐 너 자신을 들여다보고 행복을 찾아가라며 정중하지만 확고하게 길을 제시하고 있다. 어설픈 과학자로서 살아갈 사람들에게 이 책은 그 어떤 지혜도 들려주지 않는다.
이 책은 과학자로 살아가기 위해 과학이란 게임에서 임해야 할 기본적인 전략과 과학계라는 생태계의 요소 그리고 거기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기 위한 여러 노하우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럼 책의 내용을 전반적으로 훑어보자.
저자들은 책의 시작에서 "너 자신을 알라!"를 강조한다. 진정한 과학자가 될 생각이 있는지 독자들에게 묻는다. 독자의 대답이 yes 라면, 저자들은 과학자로서의 다양한 연구방식과 과학자의 여러 개념들을 짚어준다. 그 뒤 저자들은 또 다시 독자에게 묻는다. "너는 어떤 부류인가?"
그 다음 저자들은 과학자로서 지녀야 할 기본적인 태도와 전략들을 2장에서 매우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이를테면, 어떤 세부 직종을 택할것인지, 각 학위 과정마다 어떤 대학을 선택할 것인지, post doc.과정의 의미와 의의, 멘토의 필요성, 공동연구자, 여러 과학자로서의 좋은 습관들, 여러 지역의 근무조건들에 대해 친절하지만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한가지 더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저자 2명의 생각이 상충하는 부분에 대한 매끄러운 처리였다. 보편적으로 공저의 경우 저자의 생각과 그에 따른 논점이 상충할 때 그들 사이에서 합의된 한가지의 이야기를 하기 쉽다. 여기서는 저자들의 서로 다른 의견과 논점은 이름을 언급하며, 독자에게 모두 들려준다. 서로 다른 두가지의 논점에 대한 판단을 독자에게 맡기는 매우 친절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하튼간에 저자들은 과학도로서 지녀야 할 기본적인 전략을 알려준 뒤 과학을 일종의 게임으로 규정하여 과학이란 게임의 규칙을 3장 전체에 걸쳐 소개한다. 이 부분은 많은 과학도들에게 꼭 필요한 내용이다. 그러나 그 어느 곳에서도(다소 과장일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경우는 그렇다) 이런 게임의 룰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는다.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거나 오로지 연구실에서의 경험을 통해 알게되는 내용들이다. 이를테면 나를 포함한 많은 과학도들은 학술지에 투고한 논문이 어떤 과정으로 accept되고 reject되는지 그 과정과 유래에 대해 자세히 알진 못한다. 이런 부분들을 저자들은 낱낱이 이야기해준다.
그 뒤 4장에서 저자들은 연구자로서의 경력을 쌓는 여러 방법들을 설명해준다. 많은 과학도들이 자신을 가치롭게 해줄 방법들을 잘 알지 못한다. 자신의 연구가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고, 자신을 어떻게 드러낼지에 대한 부분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의 판단을 자신의 선배나 지도교수에게 유보한다. 이유식은 가급적 일찍 떼는 것이 좋다고 본다. 자신의 경력을 관리하고 경력에 도움이 될 여러 변수들이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고 자신의 장점을 100%가까이 발휘하여 경력을 화려하게 하는건 남이 아니라 자신이 해야할 몫이다. 저자들은 과학에 몸담은 이들이 경력을 쌓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로 논문을 이야기한다(당연하지만 나를 비롯한 과학도들에게 등한시 되는 바로 그것). 이러한 논문을 발표하는데 요구되는 과정, 이를테면 학술지 선택과 논문의 심사과정에 대해 설명을 한다. 그 다음 저자들은 연구논문을 토대로 학술회의와 세미나 그리고 취업 면접에서 자신의 가치를 빛나게 해줄 노하우들을 알려준다. 또한 연구비를 확보하는 과정의 흐름에 대해서도 서술한다. 여기서 저자들이 강조하는건 도전정신이다. 자신의 예를 들어가며, 도전의 가치를 역설한다.
저자는 과학자로서 수행한 연구들을 활용하는 방법도 5장에서 펼쳐 놓고 있다. 과학저술, 논문검토, 학위논문 그리고 구두발표와 포스터 발표에 대해 실질적인 방법들을 적절한 참고자료와 웹문서를 제시하며 설명해주고 있다. 끝으로 저자들은 6장에서 자신과 주변 연구자들의 사례를 보여줌으로서 과학을 공부하는 이들을 위한 멘토링을 마무리한다.
워낙 번역도 잘되어서 읽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나를 포함해 과학을 공부하는 이들을 위해 출판한 저 멀리 캐나다의 저자들과 역자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내 경우 개인적인 의문과 미래에 대한 불안과 회의가 상당히 해소될 수 있었다. 이런 긍정적인 효과가 나 뿐만 아니라 과학을 공부하는 동료들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여 다소 장황한 소개를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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