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대상에 대해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의미있다고 생각되는 무언가를 치밀하게 추궁하여 밝혀내 그것을 세상에 드러내는 연구자로서 가장 기본적인 덕목은 무엇일까. 특히 연구를 갓 시작하고, 시작해야하는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란 무엇일까. (여기서 비록 표현을 '덕목'이라 하였지만, 실제로는 성공하는 연구자들의 '공통분모', 혹은 '기본적인 능력'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욱 타당할 것이다.)
수능점수? 생물 과목 점수? 과학전람회 입상여부? 토익점수 몇 점? 학부 성적? 놀랍게도 연구의 시작은 이런 지표에 결정적으로 의존하지 않는다.
연구자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지표는 바로 '지적호기심'이다.
무언가를 궁금해하고 그것에 대해 알아가고자 하는 마음이야 말로 연구자로서 필요한 궁극적인 출발점이다. '지적호기심'은 쉽게 말해 '연구'라는 -길고 힘들지만 또한 즐거운- 마라톤의 출발신호와 같아서, 그것이 '탕!' 하고 울리지 않으면, 연구는 영원히 출발점에 머무르고 답보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인간이 인간다운 조건이 첫째로 직립보행이고, 둘째로 따분한걸 견디지 못한다는 어떤 인류학자의 정의에서 보듯이 '지적호기심'이 없는 인간은 거의 없다. 실제로 나 역시 이런 인간을 만나본 적은 거의 없는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적호기심이 빛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보이는데, 이는 자신이 호기심을 느끼는 다시말해 흥미를 갖는 분야가 따로 있기 때문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 실제로 어떤이의 호기심은 어떤 창조적인 전자기기를 만드는 것에 대단히 빠져 있는데, 엉뚱하게 역사 쪽에 호기심을 쥐어짜내고 있는 경우 호기심은 부담으로 다가온다. 이런 사례는 방향선회가 필요한 경우에 해당한다. 이런 경우 연구에 대한 분야를 달리하던지 아니면, 아예 업종전환을 하는 것이 본인의 창조적인 재능 발휘의 측면에서도 더욱 생산적 일 것이다.
지적호기심은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서 출발점이다. 호기심이 없다면, 전구도 만들어지지 않았고, 전화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쓰는 모바일기기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어떤 특정한 분야에 호기심을 갖고 있다고 연구를 시작할 조건을 완전히 갖추었다고 보긴 어렵다. 모두가 훌륭한 붓을 갖고 있다고 하여 훌륭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아닌 것 처럼, 연구자로서 필요한 요소들에는 이 밖에도 몇가지가 더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두번째는 바로 끊임없는 '관찰'이다. 어떤 분야 어떤 주제에 대해 호기심을 느낀다면, 자연스럽게 관찰로 이어진다. '관찰'과 '관찰력'은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혹자는 단순한 의미로서의 '관찰'보다 관찰을 하는 남다른 능력을 의미하는 '관찰력'이 더욱 중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까지 '남다른'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비록 당장은 개인에 따른 관찰 결과의 차이가 나타날지는 모른다. 붕어의 알을 세어보았더니 1만개였는데, 누군가 2만개로 셀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여러번 끈질기게 관찰함으로서 최종적인 수렴에 이르게 된다. 이처럼 대상에 대해 호기심을 가진 채 끊임없이 추궁하고 들여다보면 결국은 그런 개인적인 능력의 차이는 충분히 상쇄되고도 남는다.
관찰이 중요한 이유는 그 다음에 자연스럽게 수반되는 중요한 요소 때문이다.
지적호기심을 갖고 어떤 대상에 대해 끊임없이 관찰하게 되면, 어느 순간부터 관찰한 내용들에 대한 '해석'을 감행하게 된다. 어떤 오리의 알이 다른 오리들보다 일찍 부화한다고 할 때 대부분은 그 관찰 결과에 만족하지 않고, 해석을 하고자 한다. 이 때 기존에 쌓여왔던 선대의 지식과 경험들을 기반으로 관찰 내용에 대한 해석을 시도하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곧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바로 이전에 존재해왔던 경험과 지식들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우리는 이러한 생각을 한다.
"왜 이런거지?"
지적호기심을 기반으로 관찰을 지속하다보면, 해결되지 않는 부분에 대한 '의문부호'는 바늘에 실가듯 항상 따라온다. 이러한 왜라는 물음은 가설의 시발점으로서 매우 중요한데, 지적호기심과 관찰이 없다면, 이 역시 시작될 수 없다. 그간 많은 연구자들이 연구자의 덕목으로서 '의문'을 갖는 자세, 다시말해 물음표를 강조했지만, 나는 이 부분에서 약간 생각이 다른 입장이다. '왜'라는 물음과 의문은 뜬금없이 도약하여 나타나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대상에 대한 지적호기심과 관찰이라는 두 가지를 견지하고 있다면, 물음표는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다. 가끔 과학을 공부하려는 이들에게 이들 과정을 도약한 채 왜라는 물음을 추궁하라고 조언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런 경우들에서 참신한 의문이 떠오르는 것을 나는 여태껏 나를 포함해 본 바가 없다. 아무런 배경도 없는 상태에서 쥐어짠다고 훌륭한 가설의 출발점인 의문이 떠오르진 않기 때문이다. 내가 옥수수에 대해 어떤 관찰이나 기본 지식도 없는 상태에서 의문이 떠오르는게 편할까? 아니면, 만인이 관심을 갖는 이슈에 대한 의문이 떠오르는게 편할까? 호기심과 관찰이 있는 경우가 의문이 떠오르기 더욱 쉬운 것은 자명하다.
왜라는 물음이 가설의 시발점이라 하였는데, 가설은 어떻게 완성될까. 바로 끊임없는 관찰에 또 다시 해답이 있다. 물론 여기서의 관찰은 보다 개념을 확장시킬 필요가 있다. 이제는 내가 직접 들여다보는 것에서 더 나아가 남들이 해놓은 것들에 대한 탐색까지 관찰의 영역을 확장시켜야 한다. 그러다보면 기존에 알려진 부분과 내가 관찰한 부분의 차이점이나, 과거에 알려졌던 부분에서 더 나아간 부분이 명확히 떠오르게 된다.
어떤 분야건 마찬가지겠지만, 과학이란 분야는 선대의 결과를 매우 중시한다. 그것이 인용이라는 '규율'로까지 정해진 분야가 바로 과학이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선대로부터 쌓여온 지식과 경험의 토대는 현재의 나와 우리에게 도움이 되고도 남기 때문이다. 그것을 무시하면 바퀴를 재발명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이처럼 내가 해 온 관찰과 선대에서 이룩해놓은 성과와 그들이 마저 끝내지 못한 의문들이 고루 혼합되어 종합된 가설이야 말로 가설 설정의 백미가 아닐까 한다. 이런 과정을 도약한 채 세우는 가설들은 실제론 나홀로 공상에 빠지기 쉬우며, 검증이 되더라도 널리 파급되지 않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나 역시 이 부분은 부단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
자. 가설을 세우기까지 필요한 덕목들을 살펴보았다. 그럼 그 다음의 검증과정이 남았다. 검증과정 에서의 필요조건은 무엇이 있을까. 앞서 세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한 실험 설계는 위해서는 우선 기본적인 논리성이 필요하다. 이것은 논리성이 전혀 없는 망상가가 아닌 이상은 너무도 쉬운 부분이기에 연구자가 갖추어야 할 보편적 덕목이라고 볼 순 없을 듯 싶다. 우리의 두뇌에 기본적으로 논리에 대한 사고회로가 없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감성이 논리성을 가로막을 때가 종종있지만, 그런 감성에 사로잡힌 이가 활약할 다른 훌륭한 분야가 더욱 많으니, 선로변경을 강력히 추천한다.
이제 실험을 하는 부분으로 넘어가보자. 이 과정에서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연구풋내기들은 난관에 봉착하기 쉽다.
우리가 갖는 의문들 중 맨손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의문들은 이미 선대에서 거의 다 이룩해 놓은게 대부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새롭게 품은 의문과 그를 기반으로 세운 가설의 검증을 위한 실험은 맨손으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고 보아도 좋다. 대부분의 실험들은 하단도 아니고 상단도 아닌 '첨단'의 영역에 해당하는데(오해는 말자. 첨단은 어디까지나 그 분야의 세부적인 개개의 첨단을 말한다. 생명과학을 전반적으로 싸잡아서 첨단을 논하는 우를 범하진 말길......), 이러한 실험방법을 배우는데 필요한 덕목이 바로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한다. (여기서 말하는 실험방법에는 최종적인 분석의 영역도 포함되기 때문에 마지막이라고 보아도 좋을 듯 하다.)
무얼까. 바로 인내와 끈기 그리고 열린 마음 이 세가지다.
인내와 끈기 참 말은 쉽지... 그러나 실험의 대부분은 인내심 하나만으로 버텨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끊임없는 반복실험과 막막한 시료 숫자는 과학의 전선에서 우리들의 스승들과 선배들이 싸워 쟁취한 훈장과도 같다. 내가 좋은 논문으로 판단하는 기준은 훌륭한 아이디어와 그것을 검증하기 위해 실시한 막대한 데이터량의 실험의 유무다. 이 요소들은 연구자 스스로나 그 주변에 감동을 선사한다. 그들의 끈기와 인내심, 달리말하자면 뚝심은 내가 지금 시급히 배워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덕목인 열린마음...
사실 연구에 매몰되다보면, 닫힌 마음으로 향하기 쉽다. 한 우물을 오래파다보면 옆의 우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사람이 파내려갔는지 알 턱이 있겠나. 그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적인 연구자라면 자신의 우물을 파내려가며 다른 우물들의 모양새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래야 내 우물물이 마르진 않는지. 우물이 무너져내리진 않을지 가늠할 수 있지 않겠나.
연구를 시작하는 이들은 아직 우물을 깊게 파내려가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열린 마음으로 주변의 지형을 고려하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 다른 분야의 연구자들이 무얼 주제로 어떤 방법으로 연구하는지 기웃거리며 배울 수도 있고, 그것을 내 실험에 그대로 적용할 수도 있다. 실제로 훌륭한 연구 업적들은 의외로 엉뚱한 분야의 결합에서 발생하곤 한다. 일례로 지질학에서 영감을 받은 다윈이 자연선택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렸듯이, 열린 마음으로 수용하는 태도는 과학을 하는 이들에게 무한한 창조성을 부여한다. 한 주제에 매몰되어 제한된 정보와 경험만으로 연구를 하는 시대는 이미 종말을 고한지 오래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고래의 뼈만 연구한다고 어떤 해답이 나오겠는가 이미 나올만한 지식적인 밑천은 바닥이 나고도 남았다. 이제 유연하게 분야를 넘나들 시기가 되었고, 이를 다른말론 '통섭'이라고들 한다.
이러한 열린마음은 특히 연구를 시작하는 이들에게 중요한데, 어떤 가설을 검증하는 방법론은 우리가 맨손으로 파악하는게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지 않은 이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과학을 시작하는 이들은 선배와 스승의 도움으로 실험의 방법론을 익힌다. 이 과정에서 만약 닫힌 태도와 편향된 습관을 드러낸다면, 그들이 배울 수 있는 점은 거의 없다. 아무리 쏟아 부어도 한귀로 들어와서 한귀로 나가는 경우 스승과 선배들은 실망만을 안고 헛수고를 한 꼴이 된다. 이런 경우는 선임들이나 후임들에게나 아무런 이득이 없다. 이런 비극적인 경우를 막기 위해 연구를 시작하는 이는 두가지의 선택을 반드시 해야한다. 보다 본인의 적성에 맞는 분야로의 전환을 하거나, 아니면 열린마음을 갖는 것이다.
이상으로 연구자로서 필요한 덕목을 연구는 제대로 시작도 안한 풋내기 주제에 늘어놓아 보았다. 연구에 재능이 있는데, 그걸 모르거나, 전혀 재능이 없는데 매달리는 경우들에 도움이 될까 싶어 굳이 시간내어 끄적여 보았다. 남들에게도 도움이 되려나? 사실은 내게 도움이 더욱 큰 글쓰기가 되었다.
'━ 연구자의 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구자의 일상 (0) | 2018.01.24 |
---|---|
연구실에서 악하게 살아남기 위한 다섯 가지 전략 (4) | 2017.12.26 |
과학자의 언어 (0) | 2017.06.03 |
증식 복원 사업이 신중해야 하는 이유 (0) | 2013.07.15 |
[책] 과학자가 되기 위한 지침서 (0) | 2011.06.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