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어릴때부터 물고기가 좋아 아마츄어 활동을 하다가 물고기 연구자가 된 케이스는 흔치 않다. 내가 아는 한, 나는 아마츄어에서 연구자로 성장한 1세대다. 그러다보니 물고기를 좋아하는 적지않은 사람들이 직간접적으로 물고기 연구자가 되는 방법에 대한 문의를 하곤 한다. 이에 내 경험과 생각을 널리 공유해보고자 글을 적어보게 되었다.
본질과 기초
만약 누군가가 요리사가 되길 희망한다면, 이 사람이 요리사가 되기 위한 길은 다음과 같이 다양할 수 있다.
국내에서 요리를 잘하는 장인의 식당의 주방에서 일을 도우며 그의 요리를 배우며 경력을 쌓은 뒤에 자신만의 식당을 차리는 방법도 있고, 요리학원을 다니며 요리 자격증을 따서 개업을 할 수도 있다. 그도 아니면 유학을 가서 유명한 셰프의 밑에서 배우는 수도 있다. 그도 아니면 푸드트럭을 운영할 수도 있다.
이처럼 요리사가 되기 위한 수많은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길에는 한 가지 본질적인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요리사가 되기 위해서는 '요리'를 적절히 구사할 줄 알아야 하고 그것을 위해 요리에 대한 다년간의 경험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물고기를 소재로 활용하는 연구자가 되는 길도 연구에 대한 경험과 훈련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인생의 선택에서 이 점을 쉽게 간과한다. 심지어 외면한다. 자기가 되고자 하는 분야에 대한 경험과 훈련을 축적하기보다는 본인의 욕망에 타협해 자기 발전의 기회를 내팽개 치는 것이다.
첫째도 생물학, 둘째도 생물학, 셋째도 생물학
요리사가 식재료를 연구하듯이 물고기를 연구하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생물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끓는 기름에 습한 식재료를 넣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단순한 반응에 대한 이해도 없는 사람이 요리사가 될 수 없듯, 생명 현상에 대한 기초 지식이 없는 사람은 물고기를 연구하는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요리사가 되려면 요리를 배워야 하고, 물고기를 재료로 하는 생물 연구자가 되고 싶다면, 생물의 학문 곧 생물학에 대한 기초를 쌓아야 한다. 그렇다면, 생물학은 어떻게 배워야 할까? 최신의 일반생물학 교재에 나온 내용 정도는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일반생물학은 생리학, 유전학, 발생학, 진화학, 생화학, 세포생물학 등의 생물학 각 분야의 지식들이 정리된 일종의 '요약서'이자 '개론서'이다. '개론'을 이해하지 못하고 '각론'으로 넘어갈 수는 없다. 일반생물학은 생물학 전공자들이 신입생때 배우지만, 제대로된 배움을 위해서는 짧지 않은 시간이 요구된다. (참고자료 : scienceon.hani.co.kr/53724?fbclid=IwAR1n9fxVFFqc-rv5LOEsmppUJ5t6ZSgWCtxT32NXH0CgE_ee5ol2-WtoFFQ)
나의 경험
기초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나의 여러 스승들은 이구동성으로 연구자는 엉덩이(앉아서 끈기있게 탐구하는 것)로 완성된다고 말씀하셨다. 본인이 연구하는 분야에 대한 기초적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이 연구자가 될 수 있을까? 답은 아마 이 글을 읽는 여러분 모두가 잘 알고 계실 것이다. 아무리 멋진 인테리어와 플레이팅으로 치장을 한들 음식의 맛이 없다면, 그를 요리사라 칭할 수는 없을것이다.
내 경험은 아마 연구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교훈을 줄 것이다. 나는 아마추어 생활에 물들어 기초를 쌓는 것을 등한시했다가, 뒤늦게 후회하여 연구를 위한 기초를 쌓기 위해 10년간 두문불출하며 노력했다. 나이가 들수록 정신적 신체적 능력이 감퇴하기 때문에 "이것이 내 부족함을 만회할 인생유일의 기회"라는 생각으로 노력했다. 이 노력 덕분에 지금이 있을 수 있었다고 확신한다. 만약 아마츄어의 욕구에 타협하고, 유유자적 놀러 다니며 인생을 온전히 즐기고, 허세를 부리며 기초를 다지는 일을 등한시했다면 지금의 나는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연구자와 연구문화 확산을 희망하며
물고기를 비롯한 야생생물과 관련된 업계(?)에는 과학적 근거가 없는 뇌피셜로 대중들을 호도하며 명성을 얻고, 생물들을 도구로 착취하며 돈벌이를 하는 사이비들이 있다(이 사이비들은 역설적으로 내가 연구자가 되기 위한 동기부여를 일부나마 제공했다.) 이들이 활개 치는 원인을 근원적으로 따지자면, 한마디로 저변이 얕기 때문이다. 만약 저변이 넓어지고 보는 눈이 많아진다면, 사이비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실제로, 요리에 대한 저변이 넓어지자 어설픈 지식과 얕은 경험으로 명성을 얻었던 사이비들은 실력있는 셰프들로 대체된지 오래다.
연구자가 많아지면 다소 경쟁이 생길 수 있지만, 위의 이유 때문에 나는 물고기를 좋아하는 아마츄어들 중 한명이라도 더 연구자가 생겨나길 희망한다. 부족하지만 이 글이 그런 희망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며 이만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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