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이루어지는 기초과학 연구는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세금 덕택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기초과학 연구결과를 납세의 의무를 다한 한국의 시민들과 공유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앞으로 이 블로그 공간을 통해 제가 했던 연구 성과들을 대다수 납세자 여러분께서 이해하실 수 있도록 한글로 보다 알기 쉽게 해설하는 기회를 갖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처음 소개할 연구는 제가 애정하고, 저를 물고기의 세계로 이끈 각시붕어에 대한 논문입니다. 논문 제목은 <한국산 각시붕어 수컷의 혼인색과 암컷의 배우자 선택>이고 지난 2012년 한국어류학회지에 발표했습니다. 저에게 책과 강의를 통해 큰 가르침을 주신 최기철 박사님께서 창립하신 학회이기에 저의 연구자로서의 시작은 어류학회와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연구를 하게 된 이유: 화려함의 이유
납자루과 (최근의 연구는 각시붕어가 속한 납자루아과 Acheilognathinae를 납자루과 Acheilognathidae로 사용하고 있으며, 저는 그 견해를 타당하다고 보고 2017년 이래로 사용해오고 있습니다.)를 비롯한 대부분의 물고기들의 수컷은 대단히 화려한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어릴적부터 이 화려한 물고기들을 보며 한 가지 질문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질문은 바로 "왜 물고기들은 화려함을 갖게 되었고, 화려함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였습니다.
고교시절 손에 끼고 읽던 <이기적 유전자>를 비롯해 여러 과학교양서를 읽다 보니, 화려함과 같은 생물들이 갖고 있는 다양한 특징들은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을 통해 진화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포식자로부터 덜 잡아먹히고, 먹이를 더 용이하게 구할 수 있고, 병에 덜 걸리는 특징들을 보유한 개체는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개체들은 도태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가지 모순이 발생합니다. 일반적으로 수컷들이 갖고 있는 화려한 색상과 과장된 장식은 오히려 포식자에게 노출되기 쉬운 거추장스럽고 위험을 초래하는 불리한 특징입니다. 자연에서 그런 특징들은 사라져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화려함이 진화할 수 있었던 걸까요?
이 궁금증을 해결할 실마리를 제공한 사람은 다름 아닌 자연선택 이론을 정립했던 찰스 다윈입니다. 그는 자연선택 이론의 맹점이 될 수도 있었던 화려함의 진화를 여러 날 동안의 고민을 통해 ‘성선택 (sexual selection)’ 이론으로 완성합니다.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을 찾은 일종의 자문자답이었던 셈이지요.
성선택 이론에 따르면 화려한 색상과 과장된 장식들은 상대방 성이 그러한 특징을 선택했기 때문에 진화되어 온 것이라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왜 화려하고 과장된 장식들을 선호했던 것이고, 그것의 이로운 점은 무엇일까요? 이에 대해선 두 가지 가설이 있습니다.
화려함이 진화된 이유: 두 가지 가설
첫번째는 좋은 유전자 가설(good allele hypothesis)입니다. 이 가설은 수컷의 화려함이란 곧 생존력이고 그 생존력이 자신의 자손들에게 대물림될 수 있다고 전제합니다. 다시 말해, 화려한 색상을 갖는 개체가 병에 저항성도 크고 먹이도 잘 먹고 활력도 넘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암컷이 화려한 색상을 가진 수컷과 번식해 자손을 만들면, 그 자손도 역시 그 수컷의 장점을 물려받을 수 있으니 선호하게 되었다는 가설입니다. 이 가설은 핸디캡 이론으로도 불립니다 (Zahavi, 1975). 대부분의 수컷들의 장식은 수컷의 생존에 불리한데, 이런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잘 살아남았다는 증표이기 때문에 암컷들이 그런 장식을 선호하게 되었다는 이론입니다.
또 다른 가설은 섹시한 아들 가설 (sexy son hypothesis)입니다. 통계학자이자 유전학자인 로널드 피셔(Ronald Fisher, 1930)에 의해 발표된 이 가설은 암컷이 생존과 별개로 그저 인기있는 아들을 만드는 방향으로 선호성이 진화한다고 설명합니다. 인기 있는 형질을 선택하면 그 아들은 다음 세대에서도 인기 있는 형질을 물려받게 되고, 그 딸들 역시 그런 형질을 선호하는 선호성을 물려받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인기 있는 아들의 특성과 그 선호성은 잠깐의 쏠림만 발생하더라도 세대를 거듭할수록 집단 전체적으로 만연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런 특성 때문에 Fisher's run away process라고도 합니다.
두 가설의 차이점은 좋은 유전자 가설은 선택되는 수컷의 화려한 형질이 '생존'과 연관되었다고 전제하는 반면, 섹시한 아들 가설은 선택되는화려한 장식들은 생존력보다는 상대방 성에게 선호되었다는 점만 전제한다는 점입니다.
과연 각시붕어는 어떤 가설을 지지할까요? 본 연구에서는 각시붕어를 통해 다음과 같은 가설을 검증해보고자 하였습니다.
각시붕어의 카로티노이드 체색에 대한 암컷의 선호성은 존재하는가?
연구 방법: 어떻게 가설을 검증할 것인가?
많은 분들께서 공감하시다시피, 각시붕어와 같은 납자루과 어류의 화려함의 중요한 요소는 노란색, 붉은색 혼인색입니다. 각시붕어가 속한 납줄개속의 속명인 Rhodeus의 유래도 '붉은 장미'에서 유래했을 정도이니 이 물고기들의 화려함이 어떤 색상에 기인하는지는 두말할 것 없겠습니다.
이 노란색과 붉은색 다시말해 적황색은 카로티노이드 (carotenoids) 계열의 색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카로티노이드는 항산화와 관련된 물질로 잘 알려져 있고, 인간을 비롯한 많은 생물들의 건강과 생존에 있어 중요한 요소를 담당합니다. 이 카로티노이드의 특징 중 하나는 인간과 물고기를 포함한 대부분의 척추동물들은 체내에서 합성되지 않아 오직 섭취를 통해 획득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넓은 적황색 영역은 수컷의 좋은 영양상태를 방증할 것입니다.
이러한 적황색 영역은 사람처럼 화장을 해서 포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만큼, 참된 건강함의 증표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생물들에서 배우자 선호는 거짓으로 꾸미는 것이 불가능한 증표를 선택하도록 진화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참된 형질'과 이 참된 형질에 대한 '선호성의 진화'를 설명하는 가설을 '정직한 신호 가설(honest signal hypothesis)'이라고 합니다. 짐작하시듯 이 정직한 신호 가설은 좋은 유전자 이론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저는 수컷의 '정직한 신호'로 알려진 '몸의 크기'와 '카로티노이드 체색'이 각시붕어 암컷의 선호성과 관련되었을 것으로 보고, 각시붕어의 배우자 선호 실험을 디자인했습니다. 배우자 선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른 변수들을 최대한 소거하기 위해 육안으로 식별이 되는 외부기생충을 갖는 개체들을 배제했고, 조개에 대한 선호성의 변수들도 소거하기 위해 조개의 종과 크기 채집 장소, 조개의 건강상태 등도 동일하게 유지해주었습니다. 또한 몸의 크기도 비슷한 각시붕어 수컷과 암컷을 엄선하였습니다.
그리고 붉은색의 정도를 측정하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화려함을 정량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여러 날 조사해본 결과 표준적인 조건에서 사진을 찍은 뒤 포토샵을 이용해 적황색의 파장을 갖는 영역을 정량하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쉽게 말해, 붉은색 영역의 픽셀을 헤아려서 정량하는 것입니다. 이 방법을 위해서 기존의 연구자들은 Image J라는 무료프로그램을 즐겨 사용했지만, 저는 어도비의 포토샵이 붉은색 영역의 픽셀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보다 편하고 유리하다고 생각해서 이를 이용했습니다. 때마침 제가 소속된 학교에서 포토샵 라이센스를 제공해주었으므로 이를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붉은색의 정도를 측정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바로 사진을 촬영하는 조건을 동일하게 유지해주어야 한다는 것 입니다. 그래서 동일한 높이에서 촬영할 수 있도록 표준 촬영대를 구입해 활용했으며, 촬영을 위한 조명 조건도 외장 스트로보(외장 플래시)의 매뉴얼 모드를 활용해 모든 개체에 동일하게 유지했습니다. 촬영에 사용된 렌즈도 60mm 접사 단렌즈를 활용해 혹시 모를 화각의 변동이 없도록 했습니다. 표준적인 조건을 찾은 다음에는 물고기들의 좌우 측면을 촬영했습니다. 물고기들의 좌우측면을 관찰해보신다면, 의외로 많은 개체들이 좌우 비대칭인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열대 관상어로 잘 알려져 있는 구피(guppy)는 좌우 대칭이 아닐 때 암컷의 반응이 보다 좋은 측면을 더 과시한다고도 알려져 있지요.
수컷의 특징을 살펴보았다면, 그 특징에 대한 암컷의 선호도를 살펴볼 차례입니다. 암컷의 선호도를 측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인간은 인기투표라도 하겠지만, 물고기는 자신의 선호도를 말해줄 수도, 글 쓰거나 손으로 가리킬 수도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물고기의 행동을 연구하는 행동생태학자들은 배우자 선호도를 알기 위해 몇 가지 기발한 장치를 고안했습니다.
가장 일반적으로 활용되는 장치는 위 그림과 같습니다. 수조를 투명한 유리벽으로 막은 뒤, 한쪽에는 수컷을 다른 한쪽에는 암컷을 넣습니다. 암컷은 일반적으로 호감을 갖는 수컷에게 다가가려 하고, 마음에 드는 수컷 주변에 더 오래 머무는 경향이 있습니다. 만약 유리벽이 가로막혀 있다면, 암컷은 수컷에게 다가가려다가 유리벽에 부딪힐 것입니다. 심지어 유리벽이 그들을 가로막는다는 것을 알게되더라도, 유리벽 근처에서 오래 머물곤 합니다. 이런 점에 착안해 암컷이 수컷에게 다가가기 위해 유리벽을 쪼는 횟수와 유리벽 근처에 머무는 시간을 측정하여 암컷의 선호도를 정량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방법 말고, 암컷의 선호도를 측정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암컷이 수컷과 짝을 맺어 낳는 알의 숫자를 세는 것 입니다. 물고기는 많은 숫자의 알을 품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수컷과 짝짓기를 할 때는 더 많은 알을 산란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수컷과 짝짓기를 할 때는 더 적은 알을 산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납자루과의 행동생태를 연구하는 유럽의 연구자들은 조개에 낳는 알의 숫자를 세서 수컷에 대한 암컷의 선호도를 정량했습니다. 저도 이 방법을 이용하고 싶었지만, 많은 조개와 각시붕어가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위와 같은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암컷과 수컷은 구애 행동과 번식과정 중에 쉽게 지치기 때문에 실험은 여러 날에 걸쳐 개체들을 번갈아 가며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수컷을 보는 순서가 암컷의 선호도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실험의 순서를 교차해서 실험했습니다.
당초 계획과 달리 실험과정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번식이 이루어지는 시기는 봄과 초 여름이고 대학교의 1학기와 맞물립니다. 행동을 연구하던 수조실은 강의실 사이에 끼어 있었기 때문에 혈기왕성한 학생들로부터 발생되는 소음과 진동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대학원생의 일상은 그렇게 한가롭지 않습니다. 실험을 하고, 수업을 듣고, 강의조교를 하고, 분자 실험을 배우고 적용하며, 또 다른 연구과제에 관련된 일들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캠코더로 영상을 찍고 다음에 재생하며 행동을 관찰하고 기록해야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습니다.
데이터 쌓기: 뚝심의 중요성
그럼에도 일주일 내내 하루 평균 3시간 이상은 수조실에서 관찰을 하기 위해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수조실험과 더불어 100개 가까운 수조를 혼자 관리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늘 일관적인 상태를 유지시켜주어야 안정적인 연구가 가능하기 때문이지요. 물고기들만이라도 협조를 해준다면 힘을 내겠지만, 그들도 협조적일 이유는 없습니다. 수컷은 기분이 내키지 않으면 구애 행동을 하지 않았고, 암컷도 마찬가지로 어느 날은 수컷에 아무런 흥미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실험을 하려고 모든 준비를 마쳤는데 암컷이 미동도 않는다면, 그 날의 실험은 끝난 것입니다. 게다가 암컷의 산란 최적 시기는 일정한 주기로 변동합니다. 각시붕어의 산란관은 산란기 동안 내내 길어져 있는 상태가 아니라, 마치 인간의 생리주기처럼 주기적으로 길어졌다 짧아졌다를 반복합니다. 산란관이 짧아지면 암컷은 번식에 소극적으로 행동하고, 수컷도 그런 암컷을 공격하곤 합니다. 그러니 1번 암컷의 배우자 선호성을 관찰 타이밍을 놓치면 다음 산란관이 나올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합니다.
끝없는 반복과 그로 인한 깊은 인내심은 과학자에게 요구되는 미덕입니다. 그 미덕을 위해 다른 과학자들이 그렇듯 저는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주말이 사라졌고, 자취하는 원룸은 잠시 눈을 붙이고, 씻고, 빨래를 돌리는 공간으로 변모했습니다. 휴대폰을 들여다볼 여유도 생기지 않았으니 사람들과의 관계도 소원해지게 되는 건 당연했습니다. 그래도 즐거웠던 기억이 납니다. 모든 것은 배움을 위한 것이었고, 남들이 알지 못했던 것을 배워나가고, 알아간다는 것의 즐거움은 형용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정신없는 실험 과정에서 몇 가지 깨달은 부분이 있습니다. 우선, 살아있는 동물의 행동을 연구한다는 것은 보통의 인내심과 집중력 그리고 끈기로는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물고기가 좋아서 한두 마리를 관찰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수십 ~ 수백 개의 어항을 일정한 환경을 갖추어주고 관찰하고 연구한다는 것은 전혀 별개의 일이었습니다. 왜 최기철 박사님께서 연구자에게 필요한 덕목으로 '뚝심'을 강조하셨는지 이때 절감했습니다. 여러 간섭과 방해요인들을 극복하고 오로지 탐구에 전념한다는 것이 바로 과학자의 뚝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연구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연구는 혼자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혼자 할 수 있는 연구는 매우 제한적입니다. 대부분의 연구주제들은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운 작업들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 감당할 수 있는 허용범위는 사람들에 따라 다릅니다. 적어도 저는 실험실 조건에서 실험 환경을 셋업하고 유지하며 행동을 관찰하여 데이터를 축적하고 분석하는 일련의 작업을 홀로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모두 극복하고 혼자 해내는 사람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란 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비록 본래 계획은 더 많은 데이터들을 얻는 것이 목표였지만, 더 많은 개체들을 실험하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실험 막바지에는 병이 돌아 실험 대기 중이던 나머지 개체들을 못쓰게 되기도 해서 더 물고기를 희생해가며 연구를 할 수 없었습니다.
결론: 실험을 통해 알게 된 사실
이처럼 어렵게 생산된 데이터들을 통해 알게된 사실은 각시붕어 암컷은 수컷의 전체적인 카로티노이드 색소의 면적이 넓을수록 더 높은 선호도를 갖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과학의 매력은 이 세상 누구도 알지 못했던 작은 사실 하나를 알아낸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동안은 다른 사람이 생산한 지식을 막연히 수용하던 입장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소비자임과 동시에 지식 생산자로 발돋움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누군가는 당연하게 여길 수도 있었을 이 명제를 증명한 사례는 지금껏 없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생물에 대해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들 몇 가지는 증명되지 않은 뇌피셜 상태의 것들이 적지 않습니다. 특히 진화생물학에 관련된 명제들 이를테면 "납자루는 조개와 (상리) 공생하는 사이다"라는 부분도 증명된 부분이 없습니다. 오히려 유럽에 분포하는 유럽납줄개는 조개에 기생하는 것으로 연구되었습니다. 동아시아 그중에서도 한국에 사는 종들이 조개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엄밀하게 증명된 바는 현재까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다시 결론으로 돌아가서, 카로티노이드의 면적이 넓은 개체와 짝을 맺길 선호한다는 것은 좋은 유전자 가설을 간접적으로 지지하는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카로티노이드가 먹어서 축적되는 특징이기에 잘 먹고 생존해왔다는 증표로 활용될 수 있지요. 한 가지 재미난 사실은 이 카로티노이드 색소에 대해서 인간 역시 배우자 선호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음식을 통해 섭취한 카로티노이드 색소는 얼굴에서도 잘 나타나는데, 그 정도가 높으면 더 매력적으로 느낀다는 것이지요. 흔히 낯빛이 좋다고 할 때 창백한 하얀색을 건강하다고 여기진 않는 것도 이런 맥락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각시붕어의 배우자 선호가 좋은 유전자 가설을 지지하는지 확정하기에는 해결되어야 할 숙제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카로티노이드의 면적이 넓은 아빠의 자손들이 실제로 잘 먹고 잘 살아남아야 암컷이 카로티노이드가 잘 발현된 수컷을 선호하는 이유가 더 잘 설명되겠지요. 이 부분은 다른 연구자 분들의 숙제로 남겨두겠습니다. (어쩌면, 나중에 제가 다시 해볼지도 모르겠군요.)
새로운 질문: 암컷마다 개취가 나타난 이유
한편, 연구 과정에서 몇 가지 흥미로운 부분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암컷들이 수컷들에 대해 일관적인 선호도를 보여주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쉽게 말해, 암컷마다 개취(개체취향)가 존재했습니다.
왜일까요?
이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가설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짚신도 제짝 (genetic compatibility)' 가설입니다. 개체들은 저마다 외부 환경에 대해 저항하는 능력 차이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은 '면역 기능의 차이'입니다. 이 면역과 관련된 능력은 일반적으로 다양한 병원체에 저항하는 능력을 갖는 개체에게 더욱 생존에 유리함을 부여합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암컷에게 A, B, C 병원체에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D 병원체에 저항력이 있는 수컷과 A, B, C 병원체에 저항력이 있는 수컷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전자를 선택할 것이라는 것이라는 것이지요. 이와 반대로 이미 D 병원체에 저항력이 있는 암컷이라면 후자를 선택하는 게 더 다양한 병원체에 저항하는 자손을 갖는다는 측면에서 더 유리한 것입니다. 이 가설은 왜 암컷들의 선호성이 일관적이지 않고 개취가 존재할 수 있는지를 훌륭하게 설명합니다.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연구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 연구인즉 "상대방의 면역기능을 어떻게 인지할까?"가 바로 그것입니다.
다른 이야기지만, "암컷은 어떻게 자신의 면역기능을 알고 있을까?"도 흥미로운 질문이고, 연구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암컷이 자신의 유전적 특성을 아는 것은 결정적인 전제는 아닙니다. 예를 들어, 북미의 민물에 사는 조개는 눈이 없지만, 물고기와 닮은 외부기관을 의태합니다. 자연선택 과정은 어떻게 눈 없이도 물고기와 닮은 외부기관이 진화할 수 있는지를 잘 설명합니다. 우연히 물고기와 유사한 외부기관의 변이가 생겼고, 그것이 보다 잘 살아남고, 그 표현형을 가진 개체들이 집단에 세대를 거쳐가며 널리 퍼져나가고, 그 후손 중에 더 물고기와 닮은 외부기관의 변이가 생기고... 이런 과정의 반복만으로도 눈 없이도 물고기와 닮은 외부기관이 진화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마찬가지로 암컷에게 있어서 자신의 면역기능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필수적이라 할 수 없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각시붕어에서는 짚신도 제짝 가설을 지지하는 연구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몇 가지 기본 실험을 해보았지만, 그 실험이 예상보다 커져버리는 바람에 저의 박사과정 기간 내에 완료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흰줄납줄개(분홍납줄개, Rhodeus ocellatus)에서는 몇 해 전에 연구된 바가 있습니다. 유럽의 연구자들이 중국에서 흰줄납줄개를 공수해서, 암컷이 자신과 다른 면역 기능과 관련된 유전적 특성을 지닌 수컷을 배우자로서 선호하는지를 연구해보았거, 그 결과, 흰줄납줄개 암컷은 자신과 다른 면역 유전자의 대립유전자(alleles)를 갖는 수컷을 더욱 선호했다고 합니다.
언젠가는 각시붕어에서도 이런 연구가 발표될 날이 왔으면 합니다.
맺음말
각시붕어는 참 매력적인 생물입니다. 물고기에 관심이 없는 분들조차도 이 작고 아름다운 물고기를 보면 아름답다고 입을 모읍니다. 그중에는 아름다움의 근원과 이유를 궁금해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 분들에게 저의 연구와 이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전형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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