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물고기와 연을 맺고 살아온지 30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 동안 보호종, 이식과 방생 등에 대한 몇몇 이슈가 있었습니다. 비록 시간은 걸렸지만, 제가 믿는 상식 선에서 여론은 수렴되어 왔습니다. 보호종을 몰래 기르는 것이 암묵적으로 당연시 되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보호종을 몰래 기르는 사람들은 여론의 뭇매를 맞습니다. 초창기에는 물고기를 이곳 저곳 이식하는 행동이 응원받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제 이식행위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점차 확산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 하나. 외래종에 대한 사람들의 맹신은 절대로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 맹신은 바로 "외래종을 잡아서 죽이면 퇴치된다"는 맹신입니다.
이는 아래 글을 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10년전에 정리한 글에서도 지적했듯이 현재 시행되고 있는 퇴치는 무의미한 시간과 돈, 인력 낭비일 뿐 입니다. 이것은 과학적 연구, 논문 따위를 들먹이지 않고 기본적인 상식적인 수준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위의 글에도 길게 설명했지만, 다시 이 자리를 빌어 요약해서 설명하자면, 우리가 한 해 동안 퇴치를 통해 죽이는 개체수는, 몇 마리의 어미 물고기만 번식해도 채워질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의 강과 하천은 보를 막고, 복잡한 하천의 구조를 단순화시켜 놓은 바람에 외래종에게 유리한 유속이 완만한 습지형 환경이 되어버린지 오래입니다. 따라서, 외래종을 위한 삶의 터전이 안정적으로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런데도 한 장소에서 고작 매년 수천마리 죽인다고 사라질 이유가 있을까요?
더 쉽게 설명하자면, 물이 시간당 1리터 씩 새 나가는 밑빠진 항아리가 있습니다. 그 항아리에 물을 시간당 1.5리터씩 붓는다면 물이 줄어들 이유가 있을까요?
만약 퇴치가 효과가 있었다면 왜 수십년간의 퇴치 활동에도 불구하고 외래종은 퇴치는 커녕 집단의 규모가 감소조차 하지 않았을까요? 어떤이들은 그나마 퇴치활동을 하기 때문에 외래종 집단의 규모가 이 정도 나마 유지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증명되지 않은 뇌내망상일 뿐입니다. 실제로는 퇴치는 고사하고, 집단의 크기가 감소되었다는 그 어떤 사소한 인과관계도 증명된 바 없습니다. 오히려 많은 외래종들의 집단 규모는 퇴치 유무에도 불구하고 수십년간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히드라의 역설
최근 이런 퇴치무용론에 이론적 근거를 더해주는 연구가 미국립과학원회보 (PNAS)에 발표되었고, 국내 언론에도 소개가 되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제가 해온 이야기를 함축시켜 정리해주어 반가운 마음에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기사에서도 지적하듯이 overcompensation 달리말하자면, 히드라 역설은 이미 경험적으로 여러 생태학자와 어업관리자를 비롯한 전문가들에게 알려져 있었습니다. 히드라 역설은 기사에서도 설명되어 있듯, 머리를 하나 자르면 두개의 머리가 돋아나는 히드라처럼 외래종을 퇴치하겠다고 제거하면 오히려 집단의 규모가 증가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설명합니다. 이를테면, 일본에서 배스의 생태를 연구하던 연구자는 큰 배스를 퇴치하는 것은 오히려 작은 크기의 배스 집단을 키우는 효과가 있음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제가 위에 링크한 글에서 10년전에도 언급했듯, 한국에서도 외래종과 관련한 히드라역설현상을 만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낚시로 큰 개체를 꾸준히 제거하는 장소에 사는 배스의 크기는 작아지지만 반대로 개체수가 많아지는 현상은 많은 배스낚시터로 유명한 장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큰 개체의 배스는 다른 물고기도 먹지만 작은 개체의 배스들을 잡아먹기 때문입니다. 생태계에서 이런 역할을 하는 큰 배스를 퇴치해버리니 천적이 사라진 작은 배스들은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는 것입니다. 한편, 작은 배스들은 수심이 얕은 연안에 접근이 용이하기 때문에 검정망둑, 붕어, 참붕어 등의 재래종을 큰 배스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잡아먹고, 하천에서도 작은 배스는 수심이 낮은 여울을 따라 오고가며 여울에 사는 어종들을 포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큰 배스의 퇴치로 인한 작은 배스의 증가는 여울과 얕은 공간에 제한적으로 머물게 되는 재래종들에게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위에 설명한 상황은 실제로 배스가 이식된 장소에서 매번 반복되는 현상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전문가들은 이 상황에 대해 그저 외래종이 해로우니 잡아서 죽여야 한다는 여론에만 힘을 실어주었고, 어떻게 외래종을 관리해야 하는지 연구에 임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한국 사회는 지난 수십년간 막대한 인력, 시간, 재원을 소모해가며 '퇴치가 효과가 있다는 맹신'에 기반한 '헛발질'을 할 수 밖에 없었을 뿐만 아니라 외래종의 생태학에 대한 기초연구 수준도 뒤쳐지게 되었습니다.
골(목표)을 넣지 못하는 무능력한 공격수는 은퇴시켜야 하며, 잡아내기만 하는 퇴치 전략은 그간 아무런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무능력한 공격수와 다르지 않습니다.
퇴치 행위는 단순히 효과없는 밑빠진 독에 물 붓는 행동에 그치지 않고 몇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문제는 동물학대에 취약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외국에서 온 생물이 재래 생태계를 교란시킨다고 하면 사람들은 혐오감을 분출하곤 합니다. 그리고 그 혐오와 분노는 외래종을 주도적으로 들여온 인간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납치당해온 외래생물들에게 표출됩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외래종에 대한 반감과 혐오를 표출하는 일부 사람들은 그들의 분노를 가학적인 행동으로 표출합니다. 여기에 심각한 우려가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들은 고통을 주는 시간을 최소화하는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고통을 주며 천천히 외래종을 죽이고 있습니다. 이는 동물 복지에 대한 보편적인 합의에 반하며, 한국 내에서도 동물복지 관련 법에 의거해 이제는 엄밀히 위법적인 사항입니다.
굳이 윤리나 법적인 잣대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동물에게 장기적인 고통을 주며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은 생명에 대한 왜곡된 관점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합니다. 우리는 연쇄살인을 저지른 사이코패스 대다수가 동물학대를 상습적으로 저질렀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범죄전문가들은 동물에 대한 학대 행위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범죄행위의 전초 단계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선진적인 외래종 관리 정책으로의 전환
이제는 아무런 효과 없는 퇴치전략에서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습니다.
최근 발표된 논문의 저자들도 인터뷰에서 지적했듯이, 외래종들이 생태계에서 갖는 기능적 특성을 이해하고 그 특성에 기반하여 집단의 규모를 제한하는 방향의 선진적인 관리 기법이 적용되어야 할 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의 퇴치 전략의 실패를 겸허히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외래종과 재래종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생태학적 연구가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현실적으로 타당하고 또한 현 상황에서 적절한 외래종 관리 방법은 배스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배스가 살아가는 호소환경을 최대한 원래의 하천의 구조로 복구시켜 주는 것입니다. 배스의 생태적 특성은 수심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유속이 완만한 습지를 선호하기 때문에 유량의 변동이 크고 유속이 빠른 대부분의 한국의 강에서는 집단의 크기가 제한됩니다. 실제로 자연적으로 흐르는 하천에서는 배스집단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배스 낚시꾼들은 그런 장소를 선호하지 않습니다. 이 전략을 적용한다면, 비록 완전한 퇴치는 어렵겠지만, 자연적으로 배스 집단이 억제됨으로써 재래종의 집단이 유지될 수 있게 되어 재래종의 멸종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방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방법은 매우 간단하고 비용과 시간, 인력도 적게 든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현재의 상황은 다행히도 최악의 상황은 아니며 우리에겐 아직 골든타임이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믿는 이유는 현 시점(2021년)까지 배스로 인해 멸종한 한국의 민물고기는 단 한 종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실패만 거듭해온 전 근대적인 퇴치 전략을 언제까지고 고집하다가는 외래종으로 인해 멸종되는 민물고기 1호가 생길지도 모릅니다. 실수로 부터 배우는 역사가 앞으로 만들어지길 간절히 희망하며 부족한 글 맺습니다.
기사링크
https://news.v.daum.net/v/20210317143612885
논문원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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