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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자의 길

진로상담 시즌의 단상 - '질문' 그리고 '꿈'

by 하늘종개 2018.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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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로상담 시즌이 되면 아래와 같은 질문들을 종종 받는다.

“어류학자가 되고 싶은데 어느 학과로 진학해야 하나요?”
“어류학자가 되고 싶은데 어느 대학이 가장 알아주나요?”
“연구사가 되고 싶은데 박사학위가 꼭 필요한가요?”
따위의 것들이다.

 

그들의 질문이 포괄적이므로 나는 그들의 질문에 대해 구체적인 답변을 주기 위해서,

다른 설명들과 함께 다음과 같은 질문을 되묻곤 한다. 

 

“어떤 분야가 관심있고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을 얻고 싶어서 연구를 하고 싶은 것인가요?”

그에 대한 질문에 대해 10명 중에 7명은 답장이 없었다...

 


나머지 2명은 내 질문에 대한 답변 대신 자신이 했던 질문을 앵무새처럼 되물었다. 

“그런 건 모르겠고 내가 묻는 말에나 대답을 해줘라”는 온건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장문의 친절한 답변을 하지 않은 적은 없다.

내가 궁금했던 부분에 답변을 해준 경우는 10명 중 한 명이 있을까 말까 하다.


2.
이와는 상반된 경험인데, 내가 얼마 전 알게 된 학부생은 다른 대학원생들 그리고 포닥들과 식사 후 자유로운 대화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진로와 관련된 조언을 듣기 위해 정제된 질문을 화두로 던졌다. 그녀는 왜 그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한 배경 설명부터, 여기에서 그 연구를 위한 데이터를 구할 수 있는지 등을 물어봤다. 

질문 자체가 도우와 버터를 수십 번 펴고 접는 정성을 들여 만든 크롸상 같았다. 그만큼 오랜 시간의 고민의 흔적이 느껴졌고, 그 질문 이후 이어진 대화를 음미할 수 있었고, 그 중심엔 과학적 질문이 있었다. 풍미가 있는 음식은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법이다. 나 또한 배움과 깨달음이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3.
비슷한 일은 또 있다. 나름 물고기 덕후라는 석사과정생인데, 3시간여 동안 둘이서 드라이브할 일이 생겨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입담이 원래 좋은 친구라 지루하지 않았는데, 가벼운 이야기들을 나누던 중 전혀 의도치 않게 괜찮은 아이디어를 듣게 되었다. 나로서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이고, 검증되기만 한다면, 엄청난 파급력을 갖게 될 말 그대로 지각변동을 일으킬만한 주제였다.

이런 아이디어를 어떻게 생각한 걸까? 본인이 좋아하다 보니 고민하고 생각할 시간이 많았다고 한다. 이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했을 때는 다들 별거 아니라 답변했다던데, 그건 그 사람들의 안목이 없었던 것이어서 일게다. 야외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지만, 늘 생각하고 아이디어를 추구하고 질문을 던지는 이 친구의 태도가 어떻게 보면 이런 아이디어를 낳은 자양분이었을 것이다.


4.
이들 일화로부터 느낀 점이 하나 있다면, 1번에서 언급한 10명 중 9명의 사람들은 과학을 즐기고 지적 호기심에 갈증을 느끼는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어류학자는 물고기 이름 좀 아는 컬렉터를 칭하는 게 아니다. SKY 학위가 없으면 어류학자가 아닌 것은 더더욱 아니다. 더욱이 학위는 목표가 아니라 과정일 뿐이다

 

중요한 건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지 나머지는 모두 부수적인 것이다. 진리의 외연을 확장해나가는 것은 과학자의 유일한 존재 이유다. 박사학위? 연구원이 되는 것? 대학교수가 되는 것? 모두 그것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어류학자는 과학자다. 따라서, 참된 어류학자는 과학적 방법론으로 생명의 진리를 물고기를 통해 탐구하는 사람이고, 당대에 알지 못하는 지식의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 적절한 가설을 세우고, 가설 검증을 위해 실험 디자인을 하고, 검증하는 과정을 수행하는 지식노동자다.

 

진리탐구의 출발점은 질문이다. 질문은 어느날 갑자기 솟아나지 않는다. 질문도 없이 자신이 어느 분야에 관심이 있는지도 스스로 불명확한 사람이 타이틀을 논하고, 끗발을 따지는 모습은 분노를 넘어 절망감을 불러 일으킨다.

 

5.
다소 시니컬한 글이 되어버렸다.

 

학문의 세계는 네트워크이고 이제는 혼자만의 연구는 가능한 시절이 아니므로, 나는 누구보다 많은 물고기를 소재로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주변에 조금이라도 늘어났으면 한다. 토론을 할 사람이 없는 건 악플보다 더한 무플의 치욕과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타이틀만 바라고 학위 받고 연구도 안 하면서 약만 파는 그리고 팔 쑥부쟁이들은 사양하고 싶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다른 길을 가셨음 한다. 타이틀을 바라보고 이 바닥에 와서 행복한 사람을 여지껏 단 한 명도 보질 못했다. 그들에게 남은건 후회의 시간 뿐이다. 진리탐구가 아닌 잿밥에 매몰된 사람들이 꾸역꾸역 학위를 얻었을 때 저지르는 만행도 이제는 그만 보고 싶다. 과학의 후속세대의 숫자가 1/10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해답을 얻는 것을 즐기며 인생을 꽃피울 사람만 이 바닥에 발을 들이길 간절히 소망한다.

 

학문 후속세대인 대학원생이 많아보았자. 그들이 진리 탐구에 몰입할 사람으로 성장할까? 출처 : 신현철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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