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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자의 길

학계의 구조적 기회 차등에 대하여

by 하늘종개 2021.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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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대부분의 환경과 자원은 균등하게 할당되지 않기에 구조적인 영합게임에 가깝다. 따라서, 누군가가 이익을 입는 동안 누군가는 손해를 입게 된다. 이는 연구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인데, 누군가는 한정된 재원으로 인해 연구의 뜻을 굽히지만 누군가는 풍부한 재원을 물쓰듯 연구를 펼쳐나간다. 만약 재원의 획득이 능력과 실력이 갖추어진 준비된 연구자에게 우선적으로 할당되는 시스템이라면 이는 부조리함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100% 온당하다곤 못하지만).

 

하지만 그 불균등 덕분에 혜택을 입어온 것이 명백한 사람들이 그 불균등으로 인해 자신의 뜻을 펴지 못했던 절대다수의 사람들에 대해 연민, 겸손 혹은 배려와 거리가 먼 발언과 제스쳐를 보여줄 때 사람들은 마음이 상하게 된다. 그들의 연구를 뒷받침한 재원들이 실은 다른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대신해서 얻은거라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싶은듯 하다. 

 

그래서 늘 감사히 생각하고 효율적인 연구를 생각해볼 때가 아닌가 한다. 이는 내가 여기와서 배운 점 중 하나다.

 

내가 참여중인 프로젝트들은 집단유전체 연구로 많은 연구비를 지출하지만, PI부터 연구원 어느 누구도 그것을 자랑하거나 오만한 허세를 부리지 않는다. 그들은 수없는 미팅에서 어떻게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의 결과를 얻고 결과를 대중, 연구자, 사회에 환원할지 고민하며 화두를 던지며 토론한다. 돈을 물쓰듯 허투루 쓰는 경우는 보질 못했고, 워낙 다수에게 투명하게 공유되는 터라 그럴 수도 없다. 이를테면, 개체당 분석비가 매 미팅마다 산정되며 투명하게 공유된다. 연구책임자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생산된 데이터가 이 프로젝트의 수혜를 입어야 하는 캐나다 원주민들에게 소화될 수 있도록 가공되어야 하고 데이터와 결과 모두 그들에게 환원되어야 함을 늘 상기시킨다.

 

이런 경험은 이곳에 머물며 여러 차례 목격되었다. 어떤 연구자는 연구비를 물쓰듯 허투루 쓰는 사람들을 향해 "저만한 연구비를 쓰고도 논문이 저 정도만 나오는건 다른 연구자들을 욕보이는 행동"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소수의 능력있는 연구자가 뛰어난 연구 성과를 거두는 시대는 이미 저물었기에, 장기적으로 구조적 기회 차등은 희석되어 갈 것이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 날이 되기까지 적어도 지금의 구조적 기회 차등의 혜택을 입은 이들은 조금 더 배려를, 불이익을 입었던 분들은 조금 더 힘을 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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