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혹독한 길을 걷고 있다. 한 문장 한 문장을 써내려가는 과정이 절대로 쉽지 않다. 공저자들이 절대로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저자라고 하면 같은 흔히 생각되는... 허허 웃으며 좋은게 좋은거지는 절대로 찾아볼 수 없다. 고맙게도 악마의 대변인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얼마전 우연히 어떤 논문들을 읽어볼 수 있었다.
그 논문들을 읽으며 아래와 같은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쉽네"
"참 쉬운 길이다"
그 논문들에는
서론에는 가설과 아이디어가 없었고, 진부한 중언부언만 가득했다. 설령 가설이 있었다 할지라도, 가설을 충분히 검증할 실험을 하지 못했다. 설령 실험을 했다 할지라도 결과를 억지 해석으로 분식했다. 결정적으로 그 논문들에서 주장된 그 논문의 가치는 아무런 설득력이 없다. 그 논문들이 세상에 없었다고 가정하더라도 진리탐구는 절대 퇴보하지 않는다. 도리어 그 논문이 나오지 않았다면 진리탐구는 보다 진보했을 것이다. 이는 마치 아무런 효과없는 마법의 주문을 읊는 자칭 마법사로 인해 일반 시민들이 불편함을 경험하는 것과 같다.
더 쉽게 비유하자면
코끼리라는 동물의 실체를 알아보겠다고 서론에 언급한 어떤 논문을 보니, 저자들은 다른 방법 놔두고 애꿏은 장님을 시켜 코끼리 다리를 짚어 보게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고 "코끼리라는 동물은 고래일 수도 있겠다"고 불확실하게 말을 했음에도, 저자들은 확신에 찬 어조로 "코끼리란 동물은 실은 고래다"고 터무니 없는 결론을 내린다. 게다가, 코끼리라는 동물의 실체는 이미 만인이 다 알고 있는 새로울 것 없는 진부한 이야기임에도 자신들의 발견을 과대포장한다. 그저 아무런 가치도 없는 왜곡된 정보의 열거일 뿐. 진리의 역사에 그 어떤 기여를 할 수 없는 그런 허상을 창조해낸 것이다. 그러고서 논문을 친한 지인이 에디터인 저널에 투고하며, 그 유명한 "좋은게 좋은거지"를 시전. 리뷰도 지인 찬스를 발휘해 무사통과. 문제는 이 논문은 코끼리나 고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저널에 출판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리뷰했다면 이런 논문은 세상에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논문의 리뷰는 절대로 나와 같은 이에게 오지 않는다. 친한 지인이 에디터인 저널에 투고되며, 친한 지인을 특정해 리뷰프로세스가 진행된다. 심지어 공저자에 의해 리뷰가 진행되는 것을 본 경우도 있다. 쉽게 씌여지는 논문이 나올 수 있는 배경이다.
한편,
얼마전 내가 공저자로 참여한 어떤 논문이 리젝되었다. 투고했던 저널의 에디터는 교신저자의 지도교수였던 사람이었지만, '좋은게 좋은거'는 없었다. 익명의 리뷰어들은 혹독(하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공정)한 피드백을 주었으며, 에디터께서도 리뷰어들의 의견을 종합해 리젝으로 결론을 냈다.
Friend of the editor pic.twitter.com/7el9QbFl39
— Oded Rechavi 🦉 (@OdedRechavi) May 28, 2021
지인을 에디터를 통해 쉬운 논문을 출판하는 사람들에 대한 풍자
이런 것들을 겪고 위에 언급했던 쉽게 씌여진 논문들을 보면
깊은 한숨과 함께
"참 쉬운 길이다"
"쉽네"
라는 말이 나올 수 밖에 없지 않을까?
누군가는 이런 상황에 대해 자조섞인 아래와 같은 말을 하기도 했다.
"한 사람이 평생 쓸 수 있는 논문의 숫자를 제한하는 논문 총량제를 해야한다"
다소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요즘 많이 공감된다.
다양한 분야에서 이런 쉬운 결과물들은 흔히 목격된다. 음악계도 이는 다르지 않은지 마이클 잭슨은 이런 어록을 남기기도 했다.
"
나는 지금껏 한평생 음악을 하면서 성인 솔로로서 낸 앨범이 고작 6개밖에 안 된다. 왜 그런 것 같은가? 완벽한 앨범을 만들기 위해 한 앨범을 만들 때마다 5~6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많은 아티스트들이 한두 곡의 히트곡을 빼고는 나머지 공간을 시시껄렁한 곡들로 채워 넣는다. 하지만 나는 항상 한 앨범의 모든 곡들이 최고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앨범을 만들란 말이다.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은 죄악이다. 적어도 사람들이 차를 몰고 레코드점에 가서 앨범을 골라들고 지갑을 열어 계산을 하는 수고를 생각하라. 그리고 그 수고를 감수할 가치가 있는 앨범을 만들어라.
"
쉽게 씌여진 논문
그것은 곧 쉽게 사라질 그리고 쉽게 사라져야만 할 것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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