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 경험 상, 연구실에 노크하는 사람 중 연구 그 자체를 하고자 했던 사람은 10명중 평균 1~2명 정도였다. 대개는 졸업유예, 취업을 위한 스펙 정도로 대학원 진학을 고려하는 경우가 많았다.
2 인기있는 연구보다 본인이 정말 하고 싶어하는 연구를 위해 연구실에 진학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니, 본인이 무얼 하고 싶어하는지 명확히 정하고 연구실을 노크하는 사람이 있긴 한가?
3 만약 당신이 최저 생계비 X원을 간신히 벌고 있고, 비슷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그 두배를 번다고 박탈감을 느낄 것 같다면, 대학원은 좋은 선택지가 아니다. 더 많은 돈을 버는게 삶의 중요한 척도라면 대학원은 쳐다보지도 말자.
4 연구실(특히 한국)이란 공간에서 좋은 사람을 만날 기대를 안하는 편이 좋다. 간혹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10번 기대하면 9번의 실망이 기다린다. 경쟁에 한 평생 몰두해왔던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상호호혜적인 행동을 하면서 사교적인 사람이 되진 않더라. 동료로서 관계는 형성될지 몰라도 좋은 인연은 글쎄...
5 고생물학자는 곡괭이들고 온몸으로 땅을 파야 화석이 나온다. 물고기를 연구하려면 땡볕에서 허리가 끊어질 정도로 그물질 혹은 스노클링을 해야 한다. 컴퓨터 앞에서 분석을 하는 과정에서는 항문이 빠지는 고통을 맞이할 것이다. 거의 모든 기초과학이 이러하다. 이런 과정은 건너뛸 수 없는 연구자의 숙명이다. 이 모든걸 외면하는 지름길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다른 길'이다.
6 혈액형론, 점성술, MBTI 성격론 같은 비과학적 미신에 대한 신념이 큰 사람은 근거와 진리를 탐구하는 대학원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연구를 진행하며 몇가지 피할 수 없는 함정에 빠진다. 문제는 그 연구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그 함정에 함께 빠지도록 한다는데 있다.
7 자신의 이익만을 계산하는 것은 스스로 동료를 버리는 어리석은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 손해를 입기 싫어하는 마음에 극도로 자신의 이익을 계산하는 사람은 결국 주변에 연구를 함께할 동료는 아무도 남지 않는다.
8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진로에 대해 진지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참고 인내하면 좋은 결실이 열리고, 자신의 부족함에 대해 자각하지도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기만 하는 사람은 나중에 가서 남탓을 반드시 한다. 그러니 주변에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은 멀리 하는게 좋다. 다음에 자신의 선택의 탓을 당신에게 할 것이다.
9 습작은 반드시 혼자 해봐야 한다. 그래야 온전히 본인의 배움이 된다. 그리고 습작이 쌓이면 걸작을 만들 능력을 얻게 된다.
10 하지만, 걸작을 만들 능력을 갖게 되더라도, 걸작은 절대 혼자 해선 완성될 수 없다. 함께 발전해나가는 동료는 소중하다.
11 언제 연구자로서의 커리어를 다시 생각해야 할까? 내일 해야할 일의 절반 이상이 연구에 관련된 일이 아니면 그때가 바로 연구자로서의 커리어를 이어나갈지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12 읽기의 중요성. 논문 10편을 읽으면 평균적으로 논문 한 문장을 쓸 아이디어를 얻곤 한다. 참고논문들을 틈날때마다 읽는 습관은 매우 중요하다. 화장실, 식당, 대중교통 등에서 논문을 들고 읽는 습관을 갖는 사람들이 괜히 있겠나?
13 리뷰어한테 철저히 밟혔고 그것이 논리에 합당하다면 고마워 하자. 이렇게 까지 내 논문을 읽어줄 사람은 세상에 많지 않다.
14 일주일동안 연구실에서 자신의 데이터나 논문의 문장이 단 한줄도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주변에 도움을 반드시 요청하라. 연구자라는 직업은 배움을 구걸할 수 있다는 특권이 있다.
15 누군가가 세금에서 온 연구비를 지원받고 연구 데이터를 만드는데 쓰는 돈보다 부동산 투자, 자녀교육비 그리고 해외 여행 및 유흥비에 쓰이는 돈이 많아진다면, 그런 사람으로부터 최대한 멀어지는 것이 좋다. 자기도 모르게 배우게 될 뿐만 아니라 자칫 구설수에 휘말릴 수 있다.
16 나의 연구는 소중하다. 하지만, 근자감(근거없는 자신감)은 곤란하다. 자신의 연구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은 우선 수천번 인용되는 논문을 한편이라도 쓰고 학회에 기조강연 연사로 초빙되고 나서 해도 늦지 않다. 재밌는 점은 이 정도 급의 연구자는 자부심보단 부족함을 더 드러내더라.
17 잘나가는 사람을 시샘하는건 본능적이다. 허나 그런 잘나가는 사람과 협업보다 질투를 앞세운다면 당신의 커리어는 불행해진다. 세상은 당신보다 잘난 연구자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잘나가는 사람으로부터 배우는게 시샘하는 것보다 생산적임은 두말할것 없다.
18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한번에 다섯 문장 이상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논문은 말할 것도 없다. 글도 제대로 못 읽는데 어떻게 글을 쓰며, 글도 제대로 못 쓰는데 어떻게 말을 하겠는가? 말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은 이 세 가지가 다 안되고 있다는 것이다.
19 논문이 출판되지도 않았는데도 연구 데이터에 대한 정보를 망각하는 일이 빈번하다면, 그 데이터가 논문이 될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져갈것이다. 논문은 자식과도 같다 자식의 취향도 생일도 좋아하는 음식도 모르면서 어떻게 자식을 사랑한다고 말하는가?
20 새롭게 개발된 첨단의 방법론을 사용한다고 해서 첨단 연구자가 된다는 것은 대단한 착각이다. 방법은 연구의 가설을 타당하게 증명할 수 있는 정도만 있어도 충분하다. 나사는 조악한 컴퓨터로도 달에 사람을 보냈다.
21 비슷하게는 최신 기자재에 대한 욕심과 연구역량의 관계는 상관성이 그다지 없다. 최신의 방법론을 통해 놀라운 연구성과를 거두는 사람도 있는 한편 아이디어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실험디자인에 약점이 있는 사람 또한 최신기자재에 집착함으로써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목표가 벌레를 때려잡는 것이라면, 석기를 철기로 치환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22 많은 이들이 망각하는 것은 자기 분야의 연구사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선대의 연구를 모른채 참신성을 말하는 것은 모순이다. 아마 선대의 연구성과들을 찾아보면 당신이 생각한 참신한 아이디어의 8할은 이미 누군가 말했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23 능률과 휴식의 관계는 X축을 휴식, Y축을 능률로 놓았을 때, 위로 볼록한 포물선에 수렴한다. 적절한 휴식과 최대한의 능률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다. 휴식없는 질주는 번아웃의 지름길이고, 때로는 생명을 위협하기도 한다.
24 아무 일 없이 연구실에 출근도장을 찍는 것 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개근상은 연구실에서 무의미하다. 물론 이는 노력하는 천재에 해당되는 말이다. 천재가 아닌 90%가 넘는 일반적인 연구자들에게 루틴을 지키는 것은 성공의 지름길이더라.
25 누구나 연구 데이터를 분석하며 즐겁거나 좌절했던 순간이 있을 것이다. 만약 그랬던 기억이 희미하다면, 다른 길을 찾을 때다.
26 연구의 재원은 결국 세금에서 비롯되었으니 국민 한사람이라도 더 당신의 연구에 대해 알아야 하고 당신은 그것을 알릴 의무가 있다. 그것을 귀찮아하며 외면하는 연구자는 세금 먹튀하는 사람에 대해 손가락질할 자격이 없다.
27 결국 남는건 테크닉보다 스토리다. 연구자는 예술가와 비슷하다. 뛰어난 예술품들이 주는 감동은 기법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28 연구는 무엇으로 하는가. 좋은 기자재? 훌륭한 두뇌? 풍부한 연구비? 내 생각에 연구란 디스커션을 통해 시작되며, 디스커션으로 끝나는 것 처럼 보인다.
29 다른 사람 데이터가 탐이나면 그 데이터로 분석이라도 해보고 하다 못해 그 연구에 대해 글 몇 줄 이라도 써보고 탐을 내도 늦지 않다.
30 Authorship을 탐내는 사람 치고 그 연구 내용 자체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걸 역으로 해도 말이 된다. 연구 내용 자체에 대한 이해도가 바닥인데, 저자라면 당신은 그저 authorship을 탐내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31 혼자 가면 빨리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간다. 혼자 간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 조차도 실은 여러 사람과 함께 가고 있는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착각에서 빠져나오는게 좋다. 만약 너무 늦으면 주변에 아무도 없어질 것이고, 연구자로서의 커리어는 마무리를 해야할 것이다.
32 만약 당신의 지도교수에게 기대하는 부분이 연구에 대한 조언, 논문 교정, 토론이 아니라면, 당신의 발전가능성은 없다고 보아도 좋다.
33 역으로 위에 열거한 기대하는 바를 지도교수가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그는 이름뿐인 지도교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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