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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담 ━

영화 <나는 전설이다> 감상평

by 하늘종개 2010.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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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목을 보고서 처음엔 '전쟁 영환'줄 알았다. 동명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좀비(?) 영화라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얼마나 대단하길래 전설이 되었다는 제목이 붙는 건가? 궁금하기도 하여 오늘 아침에 보았다.

 

이 영화를 보니 깨닳는게 많다.

 

우선 줄거리를 살짝 요약하자면 (스포일러 주의) 주인공 네빌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병자들로 득실거리는 세상에서 소극적이고 방어적으로 살아간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그는 희망을 어렴풋이 품고 있다. 힘겨운 일상을 이어가면서 집안 한편에서 모두를 구원할 바이러스의 백신을 개발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미약한 움직임이지만, 조금씩 그는 무언가 해나가고 있다. 전 세계 인구의 90%가 감염된 질병이지만, 그는 자신의 노력이 어둠을 밝힐 것이라 희망을 품고 있다. 

 

그러다가 그는 희망을 잠시 의심한다. 어둠이 너무도 막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막한 일상으로 인해 희망을 잃어가고 이성을 잃어갈때쯤 그는 아직 희망을 품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이로 인해 다시금 희망의 불씨를 이어간다. 이윽고 그의 일상은 어둠을 침범하게 되고, 어둠 역시 서서히 그의 일상까지 침범하게 된다. 그는 자신이 잉태한 희망을 다른 이들에게 전달하고 모두의 희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증발한다.

 

이 영화는 그냥 재미를 추구한다면 좀비나오는 영웅 이야기로 가볍게 소비할 수 있는 무난한 작품이다. 하지만. 내 경우에는 조금 남다르게 다가왔다.

 

그 지점은 크게 두가지이다. 첫 번째 지점은 절망 속에서 피어난 희망이 나타난 장면이다. 영화 속에서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분노와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한 개인은 그것에 대항하지 않고 소극적인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주인공은 작은 희망은 품고 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희망의 대책(백신 개발) 준비하고 있다.

 

두 번째 지점은 자기희생이다. 주인공은 어둠에 의해 소중한 것(가족, 애견 등)들을 서서히 잃어간다. 그의 분노도 극에 달하고 자포자기 상태로 바이러스에 감염된 어둠에 정면으로 맞서지만, 어둠은 너무도 강력하다. 그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다시 희망의 빛을 보게 된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은 터. 그는 자신을 희생하며 전설이 된다.

 

한편 영화를 보며 전반적으로 느낀점은 '지금 내가 사는 세상도 이 영화 줄거리의 앞부분과 같은 것 아닐까?' 하는 점이다.

 

현실세계에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진 않았지만,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절대적으로 비합리적인 사고에 익숙한 어둠들'이 너무도 막강하게 이 사회에 속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며 자리 잡고 있다. 일개 개인은 감히 그에 대항할 수 없다. 다수의 횡포에 소수가 대항하면 그야말로 '지워진다.' 흔적도 없이...

내 관점에서 영화의 전반적 상황과 현실사회속 상황은 어느 정도 유사해 보인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을 어떻게 헤쳐가야 할까? 영화의 해결책이 현실세계의 대책에 적용될 수 있을까? 영화에선 어떻게 그런 어둠을 밝혀가고 있는가?

 

1차적인 대책은 주인공 네빌처럼 피할 뿐이다. 좀비들이 활동하는 밤에는 집에서 은둔하고, 좀비가 활동하지 못하는 낮에 활동하는 것이다. 이처럼 서로 부딪힘 없이 공존할 수 있다. 나도 마찬가지로 공존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 문제가 많다 해도 그저 조용히 닥치고 순응하고 적응하면 된다. (나와 같은 한국사회 대부분의 서민들은 이러한 행동전략을 거의 평생을 사용한다. 그리고 그 전략을 대물림해준다)

 

그러나 1차적 대책인 '순응과 그로인한 균형'은 영화에서처럼 언젠가 깨지기 마련이다. 둘은 충돌할 수밖에 없다. 네빌은 치료제를 만들기 위해 좀비를 산채로 포획해야 했고  그로 인해 그는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 좀비들 역시 네빌에 적응하며 살아왔다. 네빌의 일상을 알지 못했다면, 네빌이 애착하는 마네킹을 미끼로 어떻게 사용했겠는가? 시작된 갈등은 증폭되어 파국으로 치닫는다. 현실사회도 이와 다르지 않다. 언제든 갈등의 균형은 깨지고 야만적인 전투가 벌어질 준비가 되어 있다. 현실사회에서는 나와 내 주변이 부조리한 횡포에 직간접적인 피해를 당함으로서 그 갈등이 표출될 것이다. 문제는 오직 그 시기와 정도일 뿐이다.

 

침범에 대한 2차적인 대책은 무엇일까? 영화로 돌아가보자.

 

주인공은 끊임없이 자신과 동질적인 사람들을 갈구한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는 신념을 갖고, 끊임없이 생존자를 찾는 방송을 내보낸다. 자신과 같은 면역자들을 찾는 것이다. 그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하여... 협동하여 이 위기를 이겨나가기 위하여...

 

맞다. 2차적인 대책은 뜻을 함께 하는 동료를 찾는 것이다. 영화 속 주인공의 행동과 마찬가지로 나와 같은 문제의식을 갖는 사람들을 찾아가야 한다. 그리고 연대해야 한다. 물론 동료를 찾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소극적 대책 외에 문제를 해결 짓기 위한 3차적 대책도 준비해야 한다. 영화 속에서 네빌은 희망을 보다 극대화하기 위한 준비를 한다. 바로 획기적인 무기인 치료제를 만드는 것이다. 영화속 네빌은 나 스스로를 지키는 '총'과 모두를 구원해줄 '치료제'를 개발한다.

 

현실세계의 나도 이러한 현실세계를 바꾸기 위한 무기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감성에 휘둘리는 사람들을 치료할 치료제가 필요하다. 과연 그것이 무엇이 있을까? 그것은 조금 더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선 무기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개발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할 터 백신을 개발하려는데 치료제를 개발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그야말로 어불성설 일터.. 내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그렇다면 어느 정도 정해진 셈이다. 이런 무기를 개발하기 위하여 개발 방법과 능력을 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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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감상평 겸 다짐을 쓴 지 어느덧 10여 년이 지났다. 본문에서 언급한 능력쌓기를 위해 10여년 동안 연구해오며, 2020년이 된 지금에서야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힌 것 같다. 다음 10년은 그것이 어떻게 세상을 이로운 방향으로 바꿀 수 있을지 시험대에 올려보는 시간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그럼 10년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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