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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담 ━

미니멀리스트 되기

by 하늘종개 2021.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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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ing a minimalist

 

2004년, 대학교를 타지로 가게 되어 집을 나와 살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네 번의 큰 이사를 했다. 학부 신입생 때 한국의 서쪽 끝 해안가 동네로 이사해서 4년을 거주했고, 그 이후 연구소 계약직 일을 시작하며 강원도와 맞닿은 경기도 외곽지역으로 이주하여 1년 못되게 거주했다. 그 후 잠시 서울에 머무르다 고향집에 내려가 2년을 보낸 뒤, 대학원 진학을 위해 동남쪽 지역으로 건너가 8년을 보냈다. 졸업후엔 포닥을 시작하며 캐나다 동부의 몬트리올로 건너와 살게 된 것이 어느덧 3년차에 접어들고 있다. 

 

이렇게 크게 네 번의 이주를 하다 보니 내 짐은 점점 줄어들어 갔다. 처음 학부 기숙사에 들어갈땐 어머니 지인의 트럭으로 이사를 했었고 그때 기억으로 이삿짐의 규모가 사과박스로 다섯개는 족히 넘었던걸로 기억난다. 캐나다로 넘어올땐 책과 자질구레한건 고향집으로 옮겨놓고, 캐리어 하나에 백팩 하나로 넘어왔다.

 

나의 소유욕은 남들과 비교해도 적지 않았다고 자부한다. 소유욕은 곧 수집욕으로 이어졌고, 물고기를 공부하고 좋아하다보니, 관련된 수집욕을 자극하는 물건은 물고기 모형부터 관련서적, 사육용품, 표본에 이르기까지 수집했다. 그 중 아무래도 가장 큰 부피를 차지하는건 서적들. 중고서점을 뒤져가며 절판된 책들까지 모았고, 잡지를 제외하고 단행본으로만 따져서 권수로는 700권이 넘는다.

 

소유욕의 제동장치는 독립 그리고 유목민의 삶에서 시작되었다.

 

정주할 공간이 없다는 사실은 늘 마음속에 경계심을 만든다. 내 마음 한구석에는 늘 물건들을 위한 신경쓰임이 할당되어야만 했고, 나중에 그 물건이 눈에 띄지 않기라도 하면 그것을 찾기 위해 신경을 써야 했다. 이사를 하며 그 물건들이 짐이 될 때는 그런 마음이 더욱 커져만 갔다. 이사를 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그런 물건들을 하나둘 줄여가며 느낀 감정은 공허함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충만함에 가까웠다. 마음이 비워지니 그 빈자리에 채울 것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은 차를 처분했을 때 극대화 되었다. 한국을 떠나며 끌고다니던 차를 처분하고 나니 내 소유물중 유일하게 야외에 두어야 하는 물건에 관련한 스트레스는 눈녹듯 사라졌다. 늘 마음 한구석에 있었던 차와 관련한 스트레스는 이제 전혀 없다. 언젠가 한국에 돌아가면 내 소유물중 가장 큰 부피를 차지하는 책들을 처분하려고 한다. 안보는 책이나 중복된 책은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필요한 책들은 스캔을 해서 온라인 저장소에 동기화해놓으려 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컴퓨터 환경 덕분이다. MacOS로 2015년에 이주하고, 적응한 덕분에 파일시스템 관리는 그 어느 때보다 수월하고 안전하다. 맥북의 디스플레이는 책을 보는 것보다 눈에 편안함을 주며, 맥의 스팟라이트 기능은 파일을 검색하는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었다. 또한 데이터가 손실될 염려도 한결 덜하다. 스팟라이트 색인기능 덕분에 키워드만 입력하면 그 책은 물론이고 그 책의 몇 페이지에 내가 찾는 내용이 나오는지도 한번에 찾아 볼 수 있으니 수백권의 종이책을 들춰가며 필요한 내용을 검색할 필요는 없다. 이 기능이 아니었다면, 수많은 자료 틈에서 기억을 더듬어 자료를 찾아야 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제 종이책을 고집할 이유는 전혀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클라우드 백업이 있어서 파일이 손실될 염려도 거의 없어, 이제 내 짐에서 가장 큰 부담이 되던 책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이사를 해가며 짐을 줄여간 덕분에 욕심은 점점 희미해져 왔다. 그 물건이 내게 정말 중요한 의미인지 적어도 네 번은 생각할 수 있었다. 비록 고향집에 보내진 물건이 갖고 다니는 물건보다 더 많긴하나, 그 물건들의 활용도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 것만으로도 다행이며, 그 짐들의 처분을 위한 고민은 아무런 여지가 없을 것 이다. 짐을 줄이며 생기는 가장  효과라 한다면 잡념이 사라지고  자신에게 더욱 집중할  있다는 .  지금의 일에 더욱 집중할  있다는 점이라   있다. 

 

인생은 끝없는 임시의 연속이다. 안정된 직장을 갖는다고 한들 처음의 기대와 설렘은 언젠가는 식어가며, 궁극적으론 은퇴하며 새로운 길을 가야 한다. 결국 또 다른 여정의 하나일 뿐이다. 그러니 짐을 줄이는 것은 어쩌면 불가항력적인 일이다. 그 덕분에 터득한 이 미니멀리스트 더 정확히는 옵티멀리스트의 삶의 철학을 앞으로도 이어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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