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온지 몇년만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캐나다의 의료 서비스를 경험했다. 정확히는 퀘벡주의 의료서비스라 하겠다.
정말 문자 그대로 눈물 나는 서비스를 경험했기에 그 감동(?)을 잊지 않고자 이렇게 여기에 적어본다.
- 속도와 질
캐나다의 의료서비스는 심각한 질환이 아닌 경우 속도와 질 면에서 매우 만족도가 낮기로 악평이 자자하다. 정말로 정말로 느리다. 아침 8시에 병원을 가기 위해 외출해서 집에 들어온 시간은 저녁 8시였다. 참고로 병원과 집 사이의 거리는 30분 정도. 팔이 잘리거나 뼈를 붙여야 하는 대수술이었다면 이 정도 시간은 이해라도 하겠지만, 의료행위가 이루어진 시간은 30분도 채 안된다. 한없는 기다림의 연속이다. 소요시간만이 문제라면 악평까지 이어지진 않을 것이다. 문제는 전반적인 서비스 정신의 결여다. 저 긴 대기시간 동안 봐야 했던 것은 불친절한 의료관계자들이었다. 스낵타임과 흡연 그리고 잡담시간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지 병원의 그 오랜 대기시간동안 지켜봐야 했다. 그 시간에 환자 진료를 진심을 다해 했다면, 환자들이나 보호자들은 병원에서 괴로운 시간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 캐나다의 의료비는 공짜이지만, 의료보험카드가 없는 경우 한국에 비해 비싸다.
이민을 장려하는 정책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이곳에 머물때 어느 정도 안정적인 생활권에 있지 않은 임시로 머무는 상황이라면, 보험혜택을 받지 못하기에 의료비가 한국에 비해 대단히 높다. 응급실에서 의사 얼굴 보는데만 70만원을 지출해야 하고, 구급차라도 타는 날이면 각오를 해야한다. 입원 몇일 하면 천 만원대도 나간다. 만약 큰 수술에 입원, 구급차를 경험한다면 내 1년 연봉 쯤은 한방에 나갈 수 있다. -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한국에 의료목적 방문 절차가 복잡하고 추가비용이 발생한다.
이런 이유로 한국 국적을 가진 의료보험료를 성실히 납부해온 사람이라면 한국에 방문해서 치료를 받는게 더욱 유리하다. 하지만, 팬데믹 상황은 이 마저도 애로사항이 있다. 한국에 가면 2주간 자가격리를 해야하고 항공 이동을 위해서는 PCR 검사(199 CAD)가 의무 사항이 되었기 때문이다. 치료가 어렵사리 끝나고 캐나다로 돌아온다면, 현재로서는 백만원이 육박하는 호텔 자가격리가 의무사항이기에 비용과 시간 지출이 불가피하다. 심지어 비행기는 툭하면 연기되거나 취소되기 때문에, 어렵고 비싸게 발급한 PCR 검사서가 무효가 될 수도 있다. -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의료보험카드 신청서식을 전화만으로 신청가능하다. 문제는 전화연결을 시도하면 매번 전화량이 많다고 통화를 일방적으로 끊고, 수십번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신청은 고사하고 신청 서식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
2번과 같은 이유로 의료보험카드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가족이 의료보험카드를 받을 조건이 되어 오피스에 방문해 신청하려 했건만, 의료보험카드 발급하는 오피스가 문을 닫아버렸다. 그리고 방문발급이 안되고 서식을 전화로 신청하면 우편으로 보내주고 우편으로 받은 서류를 작성해 우편으로 보내라는 소리를 21세기에 한다. 그래도 옆나라의 팩스 고집보단 나으려나? 전화를 연결하니 ARS로 넘어가서 그것을 따라 가면 마지막에 한다는 소리 "통화량 많으니 다음에 걸어라 끊는다~ 바이~" 이 짓을 몇달째 수십번 하고 있지만 여전히 의료보험카드를 받지 못한 상황이다. - 의료보험없이 방문진료 가능한 워크인 클리닉은 코로나로 인해 예약제로만 운영. 예약을 위해서 의료보험번호가 필요함.
원래대로라면, 의료보험카드가 없을시 그나마 저렴한 옵션인 워크인 클리닉을 이용할 수 있다. 걸어들어가서 진료받고 처방전 받고 대략 150불 정도 내고 오면 된다. 의사 얼굴 보고 5분 남짓 문진하더라도 저 정도 낸다고 보면 된다. 문제는 코로나 때문에 워크인 클리닉이 예약제로만 운영된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은 그 예약을 하려면 의료보험카드번호가 없으면 안된다는 사실. 그럼 의료보험카드가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하는가? - 주정부 공식홈페이지도 믿을게 못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
다행히 주정부 공식 홈페이지에 예약없이 가능한 워크인클리닉이 소개되고 있어서 냉큼 달려 갔다. 웹사이트 상에서는 의료보험카드 없이도 방문 가능인것처럼 표시되어 있지만, 실제로 가보니 문은 잠겨 있고... 코로나로 인해 옮겼다는 안내문만 덩그러니 붙어있다. 옮겼다면 어디로 옮겼다는 주소 한 줄 이라도 남겨 놓을 법도 한데 그런 세심한(?) 서비스는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두뇌풀가동으로 코난에 빙의해 주변의 건물을 무작정 가보니 거기가 워크인 클리닉이었다. 물론 비응급 의료 서비스 안내 종합 창구인 811 (응급은 911)에 전화하니 통화대기를 1시간 가까이 했다는 것도 새삼스럽지 않다. 간단히 말해 의료서비스에 대한 정보가 거의 준 마비 상태라고 볼 수 있었다. - 캐나다에서 가장 무례하고 악독한 사람을 보고 싶다면, 병원에서...
구글맵을 켜고 온갖 서비스 직종의 평점을 보면, 가장 낮은 평점대는 병원에서 볼 수 있다. 나 역시 우여곡절 끝에 워크인 클리닉을 갔을 때 평생 가장 싸가지 없었던 접수원을 거기서 볼 수 있었다. 인사하고 진료받으러 왔다고 하며 보험카드가 없다고 하자마자, 내 말을 끊고 옆의 한가한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전화를 본인이 챙겨서 받는다. 그리고 세월아 네월아... 통화내용을 들으니 아무 알맹이 없는 통화내용이다. 아픈 사람 옆에 끼고 진땀빼며 쩔쩔매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옆에 있는 직원이 나서서 그나마 도움을 받았다. 물론 그 도움은 실제로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고 내가 설명한 내용을 도돌이표로 반복하길 주문한 것이다. 주정부 공식 홈페이지를 방문하거나 811에 전화를 하라는 것이었는데, 그 험난한 길을 거쳐서 유일하게 가능한 클리닉을 방문한게 그 곳이었으니까... 몇 군데 병원을 전전하다보니, 이런 서비스 정신이 심히 낮은 사람들이 한두명이 아니란 사실에 큰 실망을 했다. 얼마전 이 동네의 모 병원에서 캐나다 원주민 환자를 조리돌림하고 방치해서 죽게만든 엽기적인 사건이 벌어졌다는 사실이 전혀 놀랍지 않았다. 요양병원에서 감염된 환자를 버리고 도주한 간병인들도 충분히 있을 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늘 이 세상 어디도 지옥/천국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여기고 있다. 천국같지만 지옥의 면이 있고, 지옥같지만 천국의 면이 있는 법이다. 어떤 점에선 참 공평한 세상이며, 단지 좋은 점은 받아들이고 나쁜 점은 철저히 걸러서 내가 남은 여생을 머물 곳 만큼은 천국에 가까워지길 바랄 뿐이다. 적어도 내가 오늘 보고 겪은 캐나다의 모습은 천국 이상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환자가 아니었고 보호자 자격이었음에도 굉장한 우울 절망을 12시간 동안 연속적으로 경험했던 하루였다. 정말로 죽을 위험이 닥치지 않는다면, 캐나다에서 병원에 가진 않을 듯 하다.
오늘의 하루를 꿈에서 반복한다면 그것은 절대적인 악몽일 것이다.
2021.09.15. 추가
병원비 지불 관련해서 캐나다 의료 시스템의 처참함에 대해 추가로 포스팅할 내용이 생기고 있다. 병원비를 의사몫 병원몫 두번 나눠서 내야 하는 것 까지는 이해를 한다. 의사몫의 진료비를 팬데믹 때문에 수표를 발행해 비대면으로 우편으로만 받아야 한다는 것도 이해를 하겠다. 물론 수표 발급비와 송달료는 내가 추가로 부담해야 하고, 이를 위해 하루 날을 잡아 은행 예약을 해서 지점 방문을 해야하고, 우체국까지 찾아가 보냈어야 한다는 것도 이해는 할 수 있다. 병원이용료 역시 이체는 안되며 병원 수납구에 평일에 시간을 내서 지불해야 한다는 것도 참아줄 수 있다. 그런데, 의사 진료비를 이미 지난날에 지불했는데, 동일한 청구서를 또 보내는건 뭔가? 의사에게 메일을 보내 보낸 수표 못받았냐? 뭔가 착오가 있다고 하니, 내가 보낸 서류 사본을 요구한다. 그래서 메일로 보내주니 사진을 편집해서 달란다. 편집해서 주니 사이즈를 줄여달란다. ㅎㅎㅎ 내가 캐나다 백인의 이름을 갖고 있는 백인이었어도 이런 일을 겪었을까? 정말 질린다. 의료진 백신 의무화에 대해 거부를 하는 사태가 일어나는 이곳 상황을 보면 정말 잘못된 동네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확신으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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