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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고기이야기 ━

금강 큰줄납자루의 운명

by 하늘종개 2021.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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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사람들은 희귀한 것에 집착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고갈되고 사라져버릴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하고,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를 사회적으로 합의하여 법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최근 법적으로 보호를 받기 시작한 한 물고기가 있다. 그리고 그 물고기를 둘러싼 몇가지 현상이 몇년 동안 벌어지고 있다. 이 부분은 앞으로 사회적인 고민과 합의가 필요하다 생각되어 후대의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기록을 남겨본다. 

 

금강 큰줄납자루의 발견

큰줄납자루라는 물고기가 있다. 전 세계에서 섬진강 그리고 낙동강에만 사는 귀한 민물고기이다. 가까운 종으론 줄납자루가 있다. 줄납자루는 한국에서만 살긴 하지만, 동해안과 섬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강에서 만날 수 있는 비교적 흔한 종이다. 어느날, 한 저명한 현장전문가가 2007년경 금강에 사는 줄납자루가 특이한 형태를 갖고 있는 현상을 본인에게 제보하였고, 이후 2010년경 이를 모 대학 연구자에게도 제보한다. 2014년 해당 연구자는 금강에 사는 집단의 진화 계통 분석 결과 이 집단은 '줄납자루'가 아니며,  오히려 큰줄납자루와 가깝다는 사실과 함께 이 집단이 신종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낸 논문을 발표한다. 논문 발표 이후 2021년 현재까지 신종으로 발표되지 않았다.

 

논문에서 발췌한 진화적 계통수. 금강의 집단(A. sp.)은 큰줄납자루와 가깝게 묶인다. 

현 상황에서 금강의 집단은 신종이 될 가능성이 높은 집단이긴하지만 정식으로 신종보고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진화적으로 큰줄납자루와 가깝게 묶이는 큰줄납자루로 분류될 수 있다. 이와 비슷한 예로는 '한강납줄개'가 있다. 원래 한강납줄개는 신종으로 발표되기전 납줄개라는 물고기로 알려져 왔다. '납줄개'라는 물고기는 북한 이북과 러시아 지역에 사는 것으로 알려진 종인데, 이것이 한강에 사는 것이 밝혀져 납줄개로 알려지다가, 북쪽 지역에 사는 집단과 한강에 사는 집단 사이에 차이가 발견되어 한강 수계에 사는 집단이 한강납줄개라는 신종이 된 것이다. 당연하게도 한강납줄개의 신종이 발표되기 전까지는 한강에서 발견된 집단은 납줄개속의 어떤 종 (Rhodeus sp.)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종인 '납줄개'로 불렸다. 비슷한 사례는 여럿 찾아볼 수 있다. 참갈겨니는 형태적으로 3가지 타입으로 제안되었지만, 그 3 타입은 여전히 참갈겨니로 불리고 있다. 

 

한편, 만약 금강의 큰줄납자루가 신종이 될 경우, 금강의 큰줄납자루는 섬진강과 낙동강에 폭넓게 분포하는 큰줄납자루보다 오히려 분포 지역이 금강 일부 구간에 한정되어 극히 좁기 때문에, 큰줄납자루가 멸종위기종인 현 상황에서, 이 신종 역시 멸종위기종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해당 논문에서도 이 종의 분포가 좁은 것에 대해 제시된 바 있다.

논문에서 발췌한 금강 큰줄납자루(신종후보)의 분포도

탐욕의 행진곡

여기까지는 큰 흥미가 없는 이야기지만, 재밌고도(?) 슬픈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줄납자루는 멸종위기종이 아니어서 채집 사육이 불법이 아니지만, 큰줄납자루는 2017년 환경부에서 멸종위기야생동식물로 지정하였으므로 허가없는 채집 및 사육이 불법이 된 것이다. 보호종이 지정되기 전 일부 사람들은 큰줄납자루가 보호종이 된다는 소문을 듣고, 원정채집을 떠나기도 했다 (보호종이 지정된다는 소식이 어떻게 일반인들에게 유출되었던걸까?). 대부분 관상어로 이용되는 토종 민물고기는 보호종으로 지정된 이후 인기가 급상승하곤 하는데, 큰줄납자루도 예외는 아니었다.

 

큰줄납자루가 보호종이 된 이후, 아쉬워하던 많은 사람들의 레이더에 포착된 것이 바로 '금강의 큰줄납자루'이다. 논문 저자들은 금강에 사는 미지의 집단을 줄납자루라고 칭한 적이 없고, 심지어 금강의 큰줄납자루를 채집하고 사육하는 이들 스스로도 금강에 사는 줄납자루가 큰줄납자루와 닮았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이 집단을 '금강 줄납자루'라고 부르고 포획과 사육을 주저하지 않는다. 몰라서 그러는 것일 수 있으니 전문가로서 지나칠 수 없어 금강의 집단은 현재 상황으로는 큰줄납자루로 분류되어 있으니, 채집 및 사육은 안된다고 지적하였으나, 그 이후에도 금강 큰줄납자루의 포획과 사육은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그들이 순수하게 이 새롭게 밝혀져 나가고 있는 희귀한 생물을 이해하고 보전하는데 기여한다면 오히려 이런 관심은 박수를 보내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들 대부분이 어항에 길어야 몇 년 동안 사육하고 마는 일회성 장식품으로 소모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간의 역사를 대입해보면, 금강 큰줄납자루(혹은 신종)을 채집하러 가는 이들이 이 집단을 보전하고 연구하는데 기여할 가능성은 0에 수렴될 것이다. 그 동안의 민물고기 채집 및 사육 문화는 소모적이었으며, 지속가능하지 않았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저 자신의 어항에 채워넣고 보고 즐기고, 지인들과 나눠갖거나 판매하기 위해 물고기를 착취해왔다. 그동안 희귀한 물고기를 길렀던 사람들로부터 여러 세대에 걸친 사육과 그로 인한 품종개량을 본 적은 애석하게도 단 한번도 없다. 어항에서 사육되고 증식되어 주변에 희귀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분양되어 더 이상의 채집은 근절되고 관상어로서 희귀종이 지속가능하게 이용되었던가? 아니면 그저 잠시 어항을 꾸며줄 장식물로 소비되기 위해 꾸준히 잡혀나갔던가? 지난 20여년이 넘는 민물고기 아마츄어의 역사는 후자가 정답임을 명징하게 알려준다. 슬프지만, 희귀종을 집착하던 사람들에겐 그 어떤 진보도 없었다. 그들이 말했던 선순환, 긍정적 효과는 아무것도 증명되지 못했다. 이제는 패러다임을 전환할 때이다. 

그럼에도...

큰줄납자루가 보호종으로 지정되기 전, 금강 큰줄납자루를 최초로 제보한 현장전문가 분과 금강 집단의 유전적 다양성이 얼마나 취약할지 조사하기 위해 조사를 간 적이 있다. 애석하게도, 큰줄납자루는 몇 마리 만날 수 없었다. 현장에서 50년 가까운 경력을 갖고 계신 그 전문가께서 말씀하시길 소위 말하는 '꾼'들이 다녀갔다고 하셨다. 아니나 다를까 큰줄납자루가 살만한 공간에는 부착조류가 뒤덮여 있어야 할 돌들이 뒤집혀서 깨끗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를 현장조사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강바닥을 뒤집어 놓은 것"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금강의 큰줄납자루가 알려지고 나서는 이런 현상이 최근 유독 심해졌다 한다. 아니나 다를까. 웹서핑을 조금만 해봐도 금강 큰줄납자루를 금강 줄납자루로 부르며 채집다니는 사람들의 후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과연 금강 큰줄납자루의 미래는 어찌될까? 분명한 사실은 이 희귀한 집단은 많은 사람들의 탐욕의 희생양이 되고 있으며, 그 희생의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하루 빨리 이 큰줄납자루가 한강납줄개 처럼 참된 자리를 찾길 바란다. 그리고 비록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큰줄납자루로서 대접받으며 제대로된 보존의 수혜를 입길 바란다. 부디 이 작고 드물어져 가는 물고기가 탐욕에 눈먼 이들로부터 덜 착취당하고 그들과 공존하는 문화가 하루빨리 정착되길 바랄 뿐 이다.

 

# 이 글은 국내 최대 물고기 커뮤니티 <한국의 물고기(https://cafe.naver.com/koreanfishcafe)>에도 게시되었습니다. 생산적 토론과 반론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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