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살다 보니 설날을 표현할 일이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Lunar new year라고 표현한다.
중립적인 표현이기 때문이다.
동해를 표기할때도 나는 East sea라고 표현한다.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에 있는 바다라는 중립적인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부 중국인들이 이를 두고 발끈하는 모양이다. Chinese new year라고...
어떤 일본인들 역시 일본해가 맞다고 우기기도 하고, 학술논문에서 조차 그들의 프로파간다를 강요하는 경우를 보기도 했다.
그저 해가 뜨는 한 날, 경계를 분명히 나누기 어려운 어느 바다일 뿐이지만, 다들 그 이름, 다시 말해 형식에 목숨을 건다.
낯선 논쟁이 아니다. 역사를 보면 이런 포장지를 둘러싼 싸움이 일상적으로 벌어졌음을 알게 된다.
타인을 학대하고, 죽이는 것도 모자라, 전쟁까지 불사하기까지 했었던 쪼잔함의 역사는 인류의 크나큰 수치였다.
불행하게도, 이런 일들은 현재도 만연한다. 이를테면 선거철마다 드러나는 프레임 정치가 바로 그것이다. 선거철이 되면, 여지없이 '경제민주화'니 '4차 산업혁명'이니 온갖 표어와 추상어가 등장한다. 그 표어의 어감, 그리고 그 어감이 갖게 될 파급력을 고민하느라 허비되는 소중한 정신력과 노동력 그리고 시간은 너무도 아깝지 않은가? 서민경제를 살리려면, 국가 신성장 동력을 고민하려면, 그저 어떤 정책이 어떤 효과를 갖는지 모델링을 해보고, 그것에 따라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하면 된다. 이 과정에서 그 어떤 껍데기도 필요치 않다.
하지만, 본질은 늘 외면된다. 본질적인 물음이 저 멀리 떠나가버리는 사이 이상한 표어놀음이나 하고 있는 것은 너무도 안타깝다. 단맛을 추가하고 싶으면 설탕을 넣으면 된다. 어떤 초울트라슈퍼설탕이라는 포장지 혹은 설명이 추가된 설탕을 넣느냐 마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런 프레임과 껍데기, 표어에 집착한 덕분에 알맹이가 무엇인지 신경 쓰는 사람은 점점 더 줄어들어 가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형식과 포장을 내세우는 부류의 인간들이 바라던 바다. 그들은 본질적인 질문과 그 해결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형식과 포장에만 집착하는 이들이 멸종위기종 보전을 주장하지만, 그들에게 관심 있는 건 오직 자신에게 떨어질 손익 계산뿐이다. 마찬가지로 기후위기의 시대를 표어로 내세우는 이들 중 일부는 기후위기를 내세워 자신의 이익만 고민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껍데기에 집착하는 것은 이는 비단 정치, 사회 현안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과학의 영역에서조차 만연한다. 본질은 온 데 간 데 없고 무언가 있어 보이는 강력해 보이는 개념에 꽂혀 그것을 남용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신생 분야에 뛰어들고 연구재원을 독식하려는 연구자들 중 일부가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토론이 불가능할 정도의 역량을 가졌다는 점에 대단히 놀란 적이 있다.
이런 일들은 결국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본질보다 형식과 포장에 집착하기 때문에 비롯되는 것이다. 사회전반에 만연되어 있는 형식과 포장 그것을 걷어내야만 지금 우리가 직면한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결국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기억되고, 살아남는 것은 본질뿐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인류의 위대한 발견은 그 내용이 기억에 남지 그 발견이 투고된 저널명이 기억에 남는 것은 아니듯 말이다.
다행인 점은 또 있다. 최근 주목받는 AI가 바로 그것이다. 물론 간혹 거짓된 정보를 주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근거에 기반한 보편타당한 해답을 굉장히 빠른 시간 안에 제시해주고 있다. S대 출신의 권위 있는 중년 남성 교수가 장황하게 유튜브나 책으로 일장연설하는 것보다, AI가 제시해 주는 간결한 해답에 대해 사람들은 이제 더욱 큰 신뢰를 보내기 시작하고 있다.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는 보게 될 것이다. 간결한 본질이 남은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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