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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담 ━

기후재앙과 돈룩업, 예언 그리고 유언

by 하늘종개 2022.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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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화된 산불은 강원동부 경북일대에 역대급의 피해를 남겼다.
이것은 시작일 뿐 이다. 이제 강원서부 경기남부를 비롯한 지역을 포함한 전국 단위의 화재는 매년 찾아올 것이다.

산불이 끝나가기 무섭게 우리는 그것을 잊어가고 있다. 이 사태를 초래한 지구적인 변화는 더더욱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상황이 이미 벌어졌고 앞으로도 찾아올 것이 불을 보듯 뻔하지만 사람들은 아무런 변화가 없다.

나는 영화를 봤던것을 여러번 곱씹어보는 편이지만, 영화 돈룩업 만큼은 도저히 그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영화에서 그려졌던 암을 유발하는 상황들은 이제 일상 속에서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속에서 과장되고 억지스러워 보이는 연출들, 이를테면 주인공이 정책결정권자 앞에서 느꼈던 절망과 언론과 대중들의 어이없는 반응은 현실에서 볼 수 있는 비극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일찍이 관찰되었다. 단적인 예로 들어보자면, 300만명 인구가 사는 몬트리올에서 50만명이 뛰쳐나와 기후위기에 대한 변화를 호소하는 대규모 행진을 하는 동안, 인구 천만이 넘는 서울에서 기후위기에 대해 행동에 나선 사람의 숫자는 놀랍게도 1,000명이었다.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설문조사 결과는 더욱 처참한 수준이다.

1/6 vs 1/10,000

문제해결의 시작은 문제를 인식하는데서 시작한다. 하지만, 문제로 인식한 사람의 인구는 처참한 수준이다.

갈 길이 멀다.

갈길은 먼데, 이미 불길은 우리 곁에 찾아왔다.

기후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생태를 연구하는 내게 있어 돈룩업의 "될대로 되라" 식의 자포자기 상황은 머지 않았다.

남은 내 생애 동안 기후재앙은 일상이 될 것이다. 앞서 예견했듯 매년 산불은 전국을 휘감을 것이다. 식량 재난은 우리를 절망에 빠트릴 것이다. 우리의 일상은 팍팍해지고 유토피아를 그렸던 미래상은 디스토피아에 가까워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제 우리는 죽음을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더 친근하게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정말로 해서는 안되는 말인데, 희망이 전혀 보이질 않는다는 말을 더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행동이 필요한데 행동이 없다. 문제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문제의식을 갖는 사람이 늘어나야 하고 공감대 형성이 필요한데 문제의식과 공감대가 거의 없다. 어디서부터 접근해야할지 말그대로 희망이 보이질 않는게 어쩌면 당연하다.

아침에 해가 떠오르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이듯. 대부분의 사람들의 일상은 이 가혹한 기후재앙은 대다수 인류의 생존을 앗아가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마치 저주처럼 들리지만 실은 우리 스스로 이 저주스러운 상황을 초래한 것과 진배없는, 이 예언을 마무리하며 유언도 남겨볼까 한다.

앞으로 주어진 시간동안 내가 바꿀 수 있는 부분은 전념을 다해 노력해보겠지만, 그것이 실패하고 (이미 높은 확률로 실패할 것임이 분명해지고 있다), 생존이 위태로울 정도의 재앙이 잦아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면, 영화 <돈룩업>에서 주인공들이 그러했듯이, 좋은 시절에 대한 좋은 기억을 추억하며, 뜻을 함께하는 인연들과 조용히 생을 마무리 할 것 이다. 평온을 가져다 주는 G선상의 아리아 협주를 들으며, 좋아했던 모든 것들을 추억함과 동시에 호사를 누릴 수 있는 몇 가지는 마지막 순간일지라도 즐길 것이다.

물론 이런 일은 절대 있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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