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 그것도 기초중의 기초인 생태학 진화학을 연구하다 보면 늘 마주하게 되는 질문들 몇가지.
"그래서 그걸로 뭘 할 수 있나? 그걸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있나?"
논문들에는 저마다 그 응용될 수 있는 여지를 설명하기 위해 지면을 할애하곤 합니다. 그러나 그 설명들 대부분은 실현가능성과 멀리 떨어져 있곤 하지요. 한때 그 질문들에 대해 냉소적으로 생각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기초과학에 무슨 응용을 기대하느냐 우물에서 숭늉을 찾지 말라고 말이지요. 하지만, 팬데믹과 기후위기 시대에 접어들며, 폭우, 이상고온, 가뭄, 폭설, 화재, 대형태풍과 같은 자연재해가 일상화되고 있고, 생물다양성은 전에 없이 붕괴되어가고 있다보니, 이제 위의 질문은 제가 받는게 아니라 되려 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미련은 남습니다.
"비록 현실과는 괴리될 지언정 무언가 금자탑을 쌓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대다수 우리의 삶의 유지와 진보에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들을 하면서, 배타적 지위를 누리며 거드름을 피우는 유생의 삶의 정점에 있는 사람들을 보노라면 결국 저런 삶이 세상에 남길 흔적과 궤적은 허무주의적 결론에 도달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런 삶이 어떤 일을 하건간에 상관없이 세상이라는 찻잔은 요지부동일 것이라는 생각은 이제 점점 더 커져만 갑니다.
앞으로 하게 될 연구의 방향은 지금까지 배워온 것을 바탕으로 보다 적극적인 대책을 위한 실용성에 무게추를 옮겨가는 것은 이제 필연적인 것 같습니다. 요 몇년 사이 파도와 풍랑을 만나며 도달한 결론은 결국 그런것 같습니다.
때 마침 기회가 생겼습니다. 현실세계에 닥쳐오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연구를 해볼 기회 말입니다.
이 기회를 십분 활용해보려 합니다.
지난 10년 동안은 "이런 현상은 이것과 유의미하게 관련있습니다. 그 결과는 이러저러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 입니다" 였다면, 앞으로는 "이 현상에 관련된 메커니즘을 응용한 대책을 실행해본 결과 이러저러한 효과가 있습니다."가 주된 연구 주제가 된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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