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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고기이야기 ━

생물의 서식지 정보를 공개해야 하는 이유

생물서식지 정보의 공유는 그동안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저도 초창기 생물서식지 정보를 비공개로 해야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상황과 그동안 겪은 경험들로 인해 이 입장은 극적으로 변했습니다. 이제 생물 서식지 정보 공유가 가져오는 실질적인 이득을 4가지 핵심 관점에서 부연 설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학술 연구의 진보: 학술적 정밀도와 '빅데이터' 연구의 가속화

단편적인 채집 정보가 모여 대규모 데이터셋을 형성하면, 개별 연구자가 도달할 수 없는 거시적인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 분포 모델링(SDM)의 고도화: 정확한 GPS 좌표는 기후 변화에 따른 어류의 이동과 분포를 예측하는 모델링의 핵심 입력값입니다. 데이터가 정밀할수록 미래의 서식지 변화를 더 정확히 예측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연구에 그치지 않고 보전지역 설정과 같은 연구에 활용될 수 있습니다. 생물다양성협약의 주요 목표는 보전지구의 설정이며, 여기에 이런 지식이 활용됩니다.
  • 은밀종(Cryptic Species) 발견: 형태적으로 유사하지만 유전적으로 다른 종을 구분할 때, 정확한 채집지 정보는 유전적 변이의 지리적 경계를 확정 짓는 결정적 단서가 됩니다. 서식지정보의 공개는 이런 은밀종 발굴을 가속화할 수 있습니다.
  • 연구 자원의 효율적 배분: 이미 특정 지역에 대한 정밀한 조사가 공유되어 있다면, 다른 연구자들은 중복 조사를 피하고 아직 데이터가 없는 '블랭크(Blank)' 지역에 집중할 수 있어 국가 전체의 연구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됩니다. 국가에서 추진하는 전국자연환경조사와 같은 전국 단위의 모니터링에 중요한 지침으로 활용됩니다.

2. 생물다양성의 보전: 실효성 있는 보전 정책 수립 (Evidence-based Policy)

어디에 사는지 모르는 생물은 보호할 수 없습니다. 보전을 하기 위해서는 어디에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 환경영향평가의 정확성: 도로 건설이나 하천 정비 사업 시, 구체적인 서식지 정보가 공개되어 있어야만 개발 계획 단계에서 해당 구역을 회피하거나 대체 서식지를 마련하는 등의 실제적인 방어 기제가 작동합니다. 정보가 숨겨져 있으면 오히려 '몰랐다'는 이유로 서식지가 파괴될 위험이 큽니다. 정말로 그 생물을 아끼고 보전되길 바란다면, 선제적으로 그 생물의 서식지를 공개해야 합니다.
  • 보호구역 지정의 근거: 법적 보호종 지정이나 생태계 우수 지역 지정을 추진할 때,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위치 데이터는 행정 당국과 이해관계자를 설득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앞서 분포모델링에서도 언급했듯, 보호구역 지정을 위해서는 서식지 정보의 공개와 순환이 필요합니다.

3. 생물다양성 파수꾼: 시민 과학(Citizen Science)의 활성화와 감시망 확대

소수의 전문가가 전국의 모든 하천을 24시간 감시할 수는 없습니다. 공개함으로써 더 치밀한 상호 감시망을 가동할 수 있습니다.

  • 집단 지성을 통한 모니터링: 신뢰할 수 있는 위치 정보가 공유되면,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시민 과학자들이나 동호인들이 일상적으로 상태를 체크하게 됩니다. 이는 서식지 훼손이나 불법 포획이 발생했을 때 오히려 더 빠르게 감지하고 신고할 수 있는 '사회적 상호 감시망'으로 작용합니다. 저만 알고 있던 장소가 이제는 소문이 퍼져 알만한 사람들의 단골 명소가 된 곳들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멸종위기종을 태연히 불법적으로 잡아가고 있습니다. 눈치를 보도록 장소를 공개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 대중의 주인의식 고취: "내 집 앞 개울에 멸종위기종이 산다"는 구체적인 정보는 주민들에게 자긍심과 보호 의지를 심어줍니다. 막연한 보호 구호보다 훨씬 강력한 보전 동기가 됩니다. 서식지 정보를 숨겨서는 그들의 동기를 일깨워줄 수 없습니다.

4. 정보는 흘러야 한다: 데이터의 재현성과 오픈 사이언스(Open Science) 트렌드

현대 과학은 '검증 가능성'을 생명으로 합니다.

  • 학술적 신뢰도: 상세한 채집지 정보는 연구 결과의 재현성을 보장합니다. 다른 연구자가 동일한 지점에서 재조사를 수행하여 개체군 상태를 업데이트할 수 있게 함으로써, 해당 종에 대한 지식의 유통기한을 늘려줍니다. 일부 연구자들은 특정 종의 서식지 정보를 독점적으로 사용하며 관련한 이권을 누리는데 그치지 않고, 동료 연구자들에게 허위정보를 전달하여 그룹의 신뢰를 저해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무너진 신뢰를 재건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 국제적 협력: GBIF(세계생물다양성정보기구)와 같은 국제 플랫폼에 정밀 데이터를 공유함으로써, 한국의 고유종이나 희귀종 연구가 세계 생물학계의 흐름 속에서 평가받고 인용될 기회가 넓어집니다. 한국의 생물다양성, 그중에서도 물고기 연구 분야는 국제적으로 고립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엄연히 대한민국에도 서식하는 물고기인데 해외에서 발표된 연구 결과에서 대한민국의 정보만 누락되어 있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최기철 박사님께서 말씀하신 국제적 상호협력과 발전과 정면 배치됩니다.

마무리하며

멸종위기 야생생물 좀수수치의 서식지는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 된지 오래이며, 성지순례 다니듯 많은 사람들의 방문이 끊이질 않습니다.

 

서두에 언급하였듯이 정보공유를 통한 보호효과는 이제 거의 그 기능을 상실하였습니다. AI의 검색기능을 활용하면 이제 그동안의 기록들로 물고기들의 서식지 정보를 찾는 것은 누구라도 할 수 있습니다. 논문을 뒤적이거나, 보고서를 뒤적이더라도 마찬가지 입니다. 더군다나 서식지의 정보가 공개된다 할지라도 현행법(야생동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서는 허가없는 멸종위기종의 포획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해 공개되더라도 극단적 상황을 방지할 수 있는 법적 안전장치가 구비되어 있다는 말 입니다. 자동차가 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지만, 그렇다고 유용한 운송수단의 사용을 주저할 필요는 없습니다.

 

위에 언급된 다양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볼 때 서식지 정보의 공개는 더는 미룰 수 없는 당면한 숙제입니다. 그러니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 께서는 주저하지 마시고 Inaturalist와 같은 플랫폼 혹은 기후에너지환경부의 국립생물자원관과 같은 기관을 통해 정보들을 적극적으로 나누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