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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자의 길

연구실에서 악하게 살아남기 위한 다섯 가지 전략

by 하늘종개 2017.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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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과연 어떻게 이기적이고 기생적이고 무능력한 인간이 조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가? 그 핵심전략 다섯 가지를 중요도 순으로 설명해보겠다. 미리 밝히자면,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이 이야기들을 통해 이렇게 살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이렇게 살아왔거나 이렇게 살아갈 것이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에게 공동체가 더 유린당하지 말라는 호소문이자 젊은 입문자들에게 이런 전략을 구사하는 사람들을 조심하라는 안내문 이자, 이렇게 사는 사람들로부터 당한 만큼 배우지 않으려는 나 스스로의 약속이다. 앞으로도 내가 이런 전략을 구사하는 인간이라고 보인다면, 철저히 나를 배격해주길 바란다.

1. 조직의 책임자(PI)를 공략하라
사실 1번 전략만 잘 수행해도 절반 이상의 성공을 거둔다. 책임자는 그 이름부터 절대자이자 커리어에 있어서 생사여탈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을 공략하는 방법은 3단계로 구성된다.

만약 책임자가 인간미가 있고 정에 약하다면, 자신의 절박함에 대한 암시를 주는 것이 첫 단계이다. "가족이 딸려 있다. 이것은 나의 마지막 기회다." 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다. 이것을 첫번째 단계에 실행해야 하는 이유는 크게 2가지다. 우선 나머지 두 가지의 단계는 효과뿐만 아니라 리스크도 엄청나다. 괜히 어설프게 시도했다가 역효과로 내가 배제될 수도 있다. 또한 첫 번째 단계만 성공하면, 나머지 두 단계에서 실패하는 경우를 맞이하더라도 배척당하지 않고 온정주의적인 선처를 기대할 수 있다. 이 첫 번째 단계로 인해 내부자들이 PI에게 나에 대한 비판을 가한다 해도 당신은 절대적인 AT field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된다. 
 
두번째, 만약 PI가 돈에 혈안이 된 사람이라면, 명절과 PI의 경조사를 잘 활용하여 향응을 제공하라. 만약 청렴한 사람이고 돈 욕심이 없다고? 게다가 김영란법 때문에 노골적인 접대, 향응을 조심스러워한다고? 걱정을 말라. 주변 친인척에게 돈과 정성 가득한 뇌물을 은근히 제공하면 된다.
 
마지막 단계는 리스크가 어마어마 하지만, PI가 동성이 아닌 경우 잘만 먹히면 이것만으로도 PI의 퇴임때까지 영구 집권도 가능한 엄청난 방법이다. 바로 ‘오피스 반려자’가 되는 것이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2. 연구실에서 가장 연구성과가 좋은 열심히 하는 학생을 공략하라
연구에 관심이 없지만, 연구실에 머무는 이유는 크게 2가지,  '돈'과 '실적'이다. 실적에 있어서 본인이 연구를 하지 않으면서 편하게 업적을 쌓는 방법은 바로 연구실적이 뛰어난 재능을 가졌거나 잠재성을 가진 연구실 에이스를 내 사람으로 포섭하는 것이다. 이들을 회유하고 포섭하는 방법도 PI를 공략하는 방법과 다르지 않다. 3가지 방법 중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돈'이다. 슬프게도 대부분의 대학원생들은 돈이 없거나 궁한 처지다. 그들을 구워삶는 데 있어서 돈만큼 좋은 것이 또 없는 것이 사실이다. 주기적으로 밥과 술을 먹이면 매정한 인간이 아닌 이상 이미 반은 넘어간다. 그리고 그 학생의 편의를 봐주면서 기를 살려주면 된다. 이것을 잘만 구사하면 여러 논문에 공저로 거저 이름이 들어갈 수 있게 되고 더 나아가서 제1저자도 쟁탈할 수도 있다. 물론 후자의 상황이 벌어지면, 아무리 그전에 어떤 혜택을 주었건 간에 그 학생과의 관계는 파국이라고 보아도 좋다. 이는 최후에 써야 하는 일격이다.

3. 방장을 공략하라
어떤 연구실이건 방장은 연구실에서 정보력이 가장 뛰어나며, 연구실 내에서 돌아가는 거의 모든 일들을 PI 다음으로 잘 아는 사람이다. 이 사람을 내 사람으로 포섭함으로서 얻는 이득은 굳이 일일이 설명하고 자시고 할 것 도 없다. 포섭하는 방법은 이미 위에 기술해 놓았다. 방장을 포섭하면 아주 유용한 점이 바로 연구실의 물질적인 인프라를 활용하는데 유리해지고 우선적으로 심지어 배타적으로 점유할 수 있게 된다. 연구실의 인프라를 누리는 것은 나의 생존에 절대적인 도움을 준다. 이것은 PI의 포섭만으로는 부족하며, 방장의 조력이 시너지 효과를 만들 수 있다.
 
만약 2번에 해당되는 사람이 방장이라면, 다시 말해 연구 업적도 뛰어난 사람이 방장이라면, 한 사람에게 투자하여 두가지의 서로 다른 이익을 거두게 된다. 따라서, 당신은 연구성과가 뛰어난 사람이 가능한 방장이 되도록 만들거나 유도할 필요가 있다. 만약 그것이 어렵거나 이미 물 건너간 상황이라면, 이 두 축 가운데에서 적절히 줄타기를 하는 것이 유리하다. 이 둘 사이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5번 항목을 참고하라.

4. 연구실 밖의 외부인들에게 좋은 평판을 획득하여 적을 고립시켜라 
내부자들은 어느 순간 나의 적이 될 수 있다. 나의 의존성과 기생적 전략은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그들에게 피해를 줄 수 밖에 없다. 누구도 자신의 연구에 숟가락 올리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며, 누구도 나를 물질적 정신적으로 압박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랑비에 옷이 젖을 때는 모르지만, 어느 순간 온몸이 젖었다는 사실을 자각할 때쯤 내부자들은 나를 경계하고 심지어 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그들이 나를 적으로 상정하기 전에 보험을 들어 놓을 필요가 있다. 
 
그 보험이란 바로 외부인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들보다 먼저 연구실 외의 외부자들에게 좋은 평판을 얻고 있으면, ‘초두 효과’에 의해 그들의 나에 대한 불만과 비판은 그 효력이 상쇄되게 된다. 사람은 남의 불평을 하는 사람을 설령 그 불평이 합당하다 할지라도 좋아하지 않는다. 외부인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한 자세한 방법은 위에 설명했다시피 돈, 매력, 그리고 동정심을 적절히 구사하면 된다. 내부자들이 나로 인해 피해를 입는 것은 시간문제이기 때문에 이 전략은 미리미리 실행해두는 것이 좋은 보험이 된다. 
 
일반적으로 누군가로부터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은 3가지 행동을 하게 된다. 주변인들에 대한 호소가 첫번째, 강력한 절대자에 대한 호소가 두 번째,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보복이 최후의 수단이다. 우리가 사회에서 마주하는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다 이러지 않던가? 언론에 알리거나 경찰에 신고하거나 아니면 직접 행동에 나선다. 여기서 활용할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적을 고립시키는 것이다. 
 
세월호 사건 때를 돌이켜보라. 아무리 유가족이 호소한 들 특정 세력들과 그들을 지지하고 따르던 세력들은 절대로 그들의 말에 힘을 실어주지 않았다. 인간은 그런 존재다. 나와 관련 없는 피해자의 말보다 가해자인 친구의 말을 더 신뢰하고 지지한다. 집단성폭행 가해자의 친구들이 가해자의 SNS에 남긴 응원의 메시지를 보라. 잔학한 범죄자 조차도 결국 내가 의리를 지켜야 하는 친구일 뿐이다.
 
그러니 반드시 적 이외의 나머지 사람들을 포섭하라. 그들과 운명을 공유하는 같은 편이 되기 위해서는, '학연'과 '지연'을 적절히 활용하라. 먼 혈연관계라도 있을라 치면 그것도 좋다. 돈을 아끼지 말고 밥과 술을 사 먹이고 그들에게 연구실에서 열심히 하는 사람인 것처럼 이미지 포장을 하라. 공략 대상이 솔로라면 미팅을 알선해도 좋다. 이것만 성공하면, 적은 호소할 곳이 사라지게 되어 고립된다. 연구실의 강력한 절대자는 이미 1번 단계부터 포섭하지 않았던가? 방장은 이미 포섭해두었다. 이제는 외부의 대중들에게도 말해도 소용이 없다. 사람들은 다수가 말하는 편이 진실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대다수가 나의 편이니 나에 대한 비판은 이제 '소수의견'일뿐이다.
 
상황이 이쯤 되면 상대방에게 남은 유일한 카드는 직접적인 보복뿐이다. 보복이 가해지기 시작하는 순간 상대방의 운도 다하게 된 것이다. 가련한 것 만약 나에 대한 보복이 시작되면,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당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나는 가련한 '피해자 코스프레'를 시작하면 된다. 그렇게 되면 나는 가해자였지만, 이제는 피해자이며, 당신의 적은 이제 못된 가해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상대방은 분함을 주체 못 해서 더 폭주!

5. 나 이외의 모든 사람들이 적대관계가 되도록 하라
적의 적은 친구라는 말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갈등이 커질수록 자신의 세력을 키우려는 본능을 갖고 있다. 연구실이라고 다르겠는가? 내가 누군가의 숙적이 되어 집중적으로 비판을 당하는 것보다 나 이외의 진영들이 서로 죽자 살자 물고 늘어지게 만들면, 나에 대한 공격을 회피할 수 있다. 내가 갈등이 있는 진영들 사이에서 기계적 중립을 지키고 있으면, 양쪽 진영은 얄미운 나를 적으로 대하지 않고 도리어 포섭하려고 할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는 갈등이 선행되어야 한다. 남들을 적으로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다. 우선 무조건 방관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사람이 사는 공간에는 갈등이 필연적이다. 그 갈등의 중재자 역할을 자청하지 말고 그저 놔두면 된다.
 
모든 갈등의 시작에는 '원인제공자'가 있다. 누군가 청소를 안 한다면? 그것이 갈등의 시발점을 제공한다. 그래서 다른 구성원들이 불만이다? 늘 미소를 머금고 신경을 쓰지 마라. 극중주의! 어느 한 쪽 편에게 부정적인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것은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원인 제공자를 비롯해 누구의 편도 표면적으로 들어주지 말라. 대신 남 안볼 때 잘한다고 칭찬하고 기를 살려줘라. 여기서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문제를 일으키는 구성원에 의한 피해는 나 역시 입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누군가는 청소를 해야하는 희생양이 되고, 결국 그 누군가가 불만을 갖기 시작한다. 한번 불만을 갖게 된 구성원은 청소를 안한 원인제공자에 대해 불만을 갖게 된다. 두 진영 사이에서 신경전이 시작되는 순간, 소리 벗고 팬티 질러!!! 게임은 끝났다.
 
이제 편안히 앉아서 신경전을 관전하라. 
 
자. 이제 적대관계를 증폭시키기 위한 두 번째 단계로 넘어가 보자. 이제 양쪽 진영에게 몰래 살갑게 다가가 편을 들어주면 된다. 어떻게 하는지 예를 들어보자면, 청소를 안 하는 아무개에게 불만을 갖는 구성원에게만 다가가 이렇게 말하면 된다. "아무개가 또 안하DNA? 나는 금마 청소하는 꼴을 못봤DAY" 안 그래도 그 아무개 뒤치닥 거리 하느라 속이 부글부글할텐데, 이 말 한마디면 그 화가 더 커지고도 남을 것이다. 사람은 로봇이 아니므로, 쌓인 갈등의 골은 이따금씩 표출되기 마련이다. 어느 날 청소 안하는 아무개에게 늘 청소하는 입장의 구성원이 싫은 소리를 한 것 같으면, 한시가 늦기 전에 아무개에게 가서는 나지막하게 이렇게 말하면 된다. "아무개야 MY 힘들제? 점마가 또 청소 갖고 뭐라 카DNA? 지는 얼마나 깨끗하다고 ㅎㅎㅎ" 이제 모든 작업은 끝났다. 아싸!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고 고착화된다. 

사람 사이의 갈등은 중력과 같다. 높은 곳에서 살짝 밀기 만해도 겉잡을 수 없이 추락한다. 고담 시민 조커 선생의 명언 일단 한번 갈등이 고착화되면 이는 절대로 봉합되지 않으며, 나는 누구로부터도 주목받지 않는 행복한 중립국의 지위를 획득한다. 물론 남들의 관계가 개판이 되건 말건 나랑은 관계가 없으며, 오히려 그들이 개판이 될수록 내게는 이득이다. 한국전쟁 덕 본 이웃 나라를 보아도...

에필로그
이상의 전략은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20대 대부분이 손쉽게 요리당하는 전략이다. 대부분의 어리숙한 학생들은 이 전략의 손쉬운 희생양이 된다. 그런 이유로 누군가가 다섯 가지 정치적 노하우만 유념하고 실천한다면, 그는 연구실에서 가늘고 길게 오래오래 연명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연구실 생활 좀 오래 해본 분들은 이런 존재에 대해 직접 겪었거나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을 것이다.

가장 좋은 해결책은 연구책임자가 이 사람의 커리어를 끝내주는 것이다. DNA 구조의 발표자 제임스 왓슨은 "PI는 홈런을 치지 못하고 연구실을 좀먹는 사람들을 은퇴시킬 줄도 알아야 한다."는 명언을 남겼다. 물론 인종차별의 흑역사가 있는 사람이지만, 적어도 이 말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고 본다. 이 글을 읽으실 PI께서는 본인의 연구실에 이런 사람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잘 살펴보셨으면 좋겠다. 여러분께 필요한건 정치인이 아니라 발전하고 또 발전하여 연구자로 성장하는 후속세대일 뿐이다.

끝으로 이런 사람들을 겪었을 분들께 위로와 당부의 말씀을 글을 맺는다.

"이제 상대방의 전략은 다 읽혔을 것이다. 다들 고생 많으셨고 앞으로 힘내시라. 상대방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또 다른 대체 전략을 개발할 것이다. 늘 슬기롭게 대처하길 바란다. 그리고 다시 당부드린다. 절대 당한 만큼 배우진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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