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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고기이야기 ━

참쉬리는 왜 아종이 아닌 종인가?

by 하늘종개 2020.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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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쉬리. 종인가 아종인가?

지난 2015년, 한반도 남부지역에 서식하던 기존의 쉬리 집단들이 '참쉬리'라는 신종으로 보고되었다.

 

신종 발표 이후 일부 출판물에서는 참쉬리의 종의 지위를 부정하는 주장이 제기된다. 참쉬리와 쉬리 사이에 생식적 격리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참쉬리를 쉬리와 다른 종이 아닌 쉬리의 '아종'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낙동강 상류에 이입된 쉬리와 자생하던 참쉬리 사이에 자연잡종이 상당수 출현하고 있으며, 필자도 그것을 확인한 바 있다).

 

비록 별도의 리뷰를 거친 학술지에 실린 논문은 아니지만, 대중들을 대상으로 한 출판물에서 참쉬리를 아종으로 발표하였기에, 점점 많은 사람들이 참쉬리를 아종으로 바라보기 시작하고 있다. 하지만, 참쉬리를 아종이라 보는 관점은 몇가지 오류와 오해를 내포하고 있다. 이런 오해들은 내게 참쉬리에 대한 글을 쓰는 동기를 제공했다. 물고기를 연구하는 입장에서 대중들이 품게될 오해를 외면하는 것은 사회의 공적 지원으로 성장해온 연구자로서의 책무에 어긋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왜 참쉬리가 아종이 아닌지 살펴보자.

1. ‘아종’ 개념은 많은 비판의 여지가 있는 점차 사라져가는 개념

계통분류학의 거목 에른스트 마이어는 ‘아종’이란 “생식적 격리는 없지만, 형태, 생태적으로 잘 구분되는 독립적인 집단”으로 정의하고 있다. 쉽게말해, 아종과 종의 차이점은 생식적 격리의 유무로 요약된다. 마이어 이후 종 개념은 진화생물학의 다양한 학제들과 상호작용하며 진화를 거듭해왔으며, 그 진화의 결과, 아종이라는 개념은 명백하게 도태되어가고 있다. 

 

최근에 발표되는 기재논문들을 본다면, 아종을 사용하는 사례가 드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학자들이 공명심에 눈이 멀어 실제로는 아종인데, 자신의 실적을 위해 종으로 발표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일까? (실제로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실은 그 반대에 가깝다. 아종을 사용하는 것이 혼란과 논란을 초래하므로, 종으로 명명하여 혼란을 줄이고자 한 것이다. 실제로 연구자마다 아종과 종의 경계를 설명하는 기준인 생식적 격리를 해석하는 관점의 차이가 상당하다.

 

혹자는 자연교잡이 나타난다면 생식적 격리가 불완전하다 여긴다. 이 기준대로라면, 한국에 사는 종들 대부분은 아종이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대표적으로 참붕어와 돌고기, 점몰개와 긴몰개, 점줄종개와 줄종개, 붕어와 떡붕어, 각시붕어와 떡납줄갱이, 각시붕어와 한강납줄개, 한강납줄개와 묵납자루는 자연잡종을 형성한다. 

 

한편, 생식적 격리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면밀히 검토한다면, 그 동안 아종이라고 여겨져 왔던 대부분의 종들이 이미 생식적 격리를 충족하는 종의 지위를 갖고 있다는 결론에 어렵지 않게 도달 할 수 있다 (이 부분은 아래에 더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겠다). 요약하자면, 현대의 생물학자들은 아종의 경계를 긋는 것이 지극히 주관적이고 모호하다는 점에 대체로 동의하고 있으며, 기존의 아종들 대부분이 생식적 격리의 기준을 이미 충족하기 때문에 아종의 사용 대신 종의 개념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2. 참쉬리와 쉬리는 생식적으로 격리되어 있다.

아종과 종의 경계를 나누는 기준은 생식적 격리의 유무이다. 이 생식적 격리는 다양한 측면에서 관측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인공수정 실험만으로 생식적 격리를 간단히 판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생식적 격리는 인공수정’만’으로 판정될 수 없다. 구애행동이 차이나서 서로 교배하지 않는 2종의 조류를 인공수정을 하면 정상적인 자손이 만들어진다. 그럼 이 두 종은 같은 종인가? 이 두 종은 여전히 유효한 생식적 격리를 갖는 다른 종이다.

 

생식적 격리 개념만큼 오해가 큰 개념은 그리 많지 않다. 이 오해는 ‘몰이해’에서 비롯된다. 생식적 격리의 메커니즘은 여러가지가 알려져 있고, 다행히 현재 대학의 교양수업용 교재에도 자세히 설명되어 있을 정도로 깊이 있는 공부가 필요한 내용은 아니다. 생식적 격리는 다음과 같은 세부 메커니즘으로 이루어져 있다.

 

번식하는 계절이 달라서 교미하지 못해 나타나는 생식적 격리
번식하는 장소가 달라서 교미하지 못하는 생식적 격리
번식하는 구애행동이 달라서 교미하지 않는 경우
교미를 하되 두 종이 자손을 만들지 못하는 경우
교미를 하고 자손을 만들지만 그 자손이 불임인 경우
교미를 하여 자손을 만들고, 심지어 자손이 불임이 아니지만, 잡종의 생존력이 떨어져서 세대를 여럿 거치면서 잡종의 빈도가 감소하는 경우

 

여기서 우리는 번식하는 장소에 관련된 메커니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번식하는 장소가 다르고 사는 장소가 달라서 두 종이 애초에 자연적으로 만날 가능성이 없는 경우, 생식적 격리는 충족된다. 자연적으로 참쉬리와 쉬리가 이소적인 분포를 갖는다는데 이견을 제기할 사람은 없다. 쉽게 말해, 참쉬리가 사는 동네에는 쉬리가 없었고, 쉬리가 사는 동네에는 참쉬리가 없었다. 

 

따라서 참쉬리와 쉬리는 번식하는 장소가 물리적으로 만날 수 없고, 만날 수 없었으니 애초에 교미를 할 여지가 없다. 다시말해 생식적 격리를 충족한다. 거기에 더해 형태적 차이, 생태적 분화, 서로 다른 독립적인 계통을 오랜 세월동안 유지했다는 증거들은 참쉬리와 쉬리가 서로 다른 종의 관계임을 충분히 뒷받침한다.

 

이 밖에도, 쉬리와 참쉬리 사이에 존재할 수 있는 생식적 격리 메커니즘은 또 있다. 만약 쉬리와 참쉬리 사이의 잡종이 라이거처럼 1세대로 끝난다면, 생식적 격리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낙동강에서 나타나는 참쉬리-쉬리 교잡개체들이 불임인지 여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현재 학계에 보고된 바로는 “참쉬리와 쉬리 사이에 잡종은 1세대(F1)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뿐이다 (송하윤 등, 2019). 잡종 2세대 (F2)가 출현한다는 증거는 현재 (2020년)까지 없으므로, 아직 생식적 격리가 불완전하다고 단언 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또한, 참쉬리-쉬리 교잡개체가 불임이 아니라 할지라도, 2세대 3세대로 갈수록 잡종이 도태 될지 역시 장담할 수 없다. 만약 잡종의 적응도(fitness,생존력)가 순종보다 떨어진다면, 세대가 거듭될수록 교잡개체는 줄어들 것이고, 교잡을 형성하지 않는 전략이 자연선택되는 강화(reinforcement)의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 물론 이런 일련의 과정들 역시 생식적 격리의 메커니즘에 포함된다.

 

한편, 참쉬리와 쉬리의 종분화의 증거는 간단하게 계통수(phylogenetic tree)만으로도 지지된다. 계통수는 조선왕조실록과 같아서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주 세밀하게 기록되어 있다. 종이 언제 분화되었고 분화된 이후에 두 종이 얼마나 다른 길을 걸어왔는지, 그리고 두 종 사이에 교잡과 같은 유전적 교류가 있었는지도 알 수 있다. 계통수 상에서 참쉬리는 쉬리와 인위적 이주가 있기 전까지 유전적 흐름의 증거를 발견할 수 없다. 오직 수백만년전 종분화가 되었던 증거만 보여줄 뿐이다. 따라서 이 두 집단은 생식적 격리가 진행되어온 별개의 종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3. 서로 다른 종 사이에 잡종은 만들어질 수 있다.

이미 분화된 종 사이에 잡종을 만드는 사례는 생물학 교과서와 뉴스에도 종종 나온다. 대표적인 사례는 기후변화에 따른 북극곰과 불곰 사이의 잡종이 있다. 서로 다른 종 사이의 잡종 형성과 잡종의 운명에 대한 진화적 메커니즘은 일반생물학 교재에도 나오는 교과서적인 내용이고, 생물학자 그 누구도 다른 종 사이에 교잡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아는 ‘과학자’들은 그렇다.

 

종간 잡종화에 대한 교과서적 개념을 몇 가지 설명하자면, 이미 분화된 종 사이에 교잡에 의해 다른 종의 유전자를 받아들이는 유전자이입(introgression)이 있다. 이미 진화적으로 상당히 분화된 그룹 사이에 잡종을 만들어 하나의 종으로 유합되는 ‘역종분화(speciation reversal)’ 개념 역시 종간 교잡을 전제한다.

 

짧게 요약하자면,

아종 개념은 주관적이고 모호하기 때문에 연구자들 대부분은 사용하지 않고 있다. 잡종이 출현하는 것만으로 생식적 격리를 위배했다고 단정지을 수 없고, 잡종은 다른 종 사이에 얼마든지 만들어진다. 참쉬리와 쉬리는 생식적 격리의 기준을 충족하고, 여러 증거들은 두 종 사이의 종분화의 진화적 역사를 보여주고 있으므로, 참쉬리는 쉬리의 아종이 아닌 별도의 종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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